문득 책을 덮을 때



  문득 책을 덮을 때가 있습니다. 책이 재미없어서 덮을 수도 있지만, 책이 재미있지만 책보다 재미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려는 마음으로 책을 덮습니다. 바람을 한껏 들이켜면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서 책을 덮습니다. 빗소리를 듣거나 눈발을 바라보려고 책을 덮습니다. 노래하며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함께 놀려고 책을 덮습니다. 밥을 지으려고 책을 덮습니다. 빨래를 걷어서 개려고 책을 덮습니다. 졸려서 잠을 자려고 책을 덮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책을 덮습니다. 자전거를 타려고 책을 덮습니다. 숲에 깃들어 골짝물에 풍덩 뛰어들려고 책을 덮습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으려고 책을 덮습니다. 그리고 시를 한 줄 적바림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꿈을 읊고 싶어서 책을 덮습니다. 2016.6.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