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어느 다큐 사진가의 사진강의 노트 눈빛사진학개론 3
양해남 지음 / 눈빛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11



아줌마 사진가한테서 배운 ‘이웃을 찍는 기쁨’

―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양해남 사진·글

 눈빛 펴냄, 2016.3.10. 13000원



  지난 서른 해 남짓 다큐사진을 찍었고, 앞으로도 이 길을 즐겁게 걸어갈 양해남 님이 선보인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눈빛,2016)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서른 해 남짓 사진길을 걸었는데에도 양해남 님은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이라고 책이름에서 밝혀요. ‘서른 살 젊은이’가 아니라 ‘서른 해 사진가’ 입에서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이 불거집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서른 해나 사진을 찍었는데에도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말인가?’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리고, ‘서른 해뿐 아니라 쉰 해나 일흔 해 동안 사진을 찍어도 언제나 새내기 마음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사진을 찍어 오면서 내가 멋지다고 생각되었던 곳은 이미 누군가가 일찌감치 표현을 했었던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쪽)


나는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시간에 무게를 두고 사진을 찍습니다. 오솔길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하나의 솔방울도 나에게는 중요한 피사체입니다. (43쪽)



  사진책을 읽으면서 ‘사진·사진기’ 생각은 살며시 접고서, 다른 생각을 해 봅니다. ‘자동차·자동차 몰기’를 생각해 봅니다. 아침에 마당을 쓸면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하고 ‘어떤 자동차를 모는가’ 하는 대목을 조용히 생각해 보아요.


  어떤 사람은 작고 값싼 자동차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작고 값싼 자동차를 우악스럽거나 거칠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크고 비싼 자동차를 우악스럽거나 거칠게 몹니다. 어떤 사람은 크고 비싼 자동차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몹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몰면서 쉽게 다른 사람한테 삿대질을 하거나 빵빵빵 울려요. 어떤 사람은 자동차를 몰면서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삿대질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빵빵빵 울리지 않고 가만히 기다립니다.


  작은 자동차를 몰기에 더 부드럽지 않고, 큰 차를 몰기에 더 우악스럽지 않습니다. 작은 자동차를 몰기에 더 거칠지 않고, 큰 차를 몰기에 더 사랑스럽지 않아요.


  어떤 자동차를 몰든지, ‘자동차를 모는 사람’ 스스로 어떤 마음이나 몸짓이나 생각이나 버릇인가에 따라서 사뭇 달라요. 자동차 손잡이만 잡았다 하면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듯이 달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자동차 손잡이를 잡든 여느 때이든 늘 부드러우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어요.



아줌마 사진가는 나에게 사진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사진에 찍히는 것보다 누군가를 찍어 준다는 것은 작은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2쪽)


가장 기본인 교과서는 내 머리 안에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88쪽)



  이제 ‘사진·사진기’를 헤아려 봅니다. 작고 가벼우며 값싼 사진기로 재미나며 훌륭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늘 새롭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작고 가벼우며 값싼 사진기로는 도무지 재미없고 안 훌륭하고 안 아름답고 안 즐거운 이야기를 늘 비슷하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크고 무거우며 비싼 사진기로 도무지 재미없고 안 훌륭하고 안 아름답고 안 즐거운 이야기를 늘 비슷하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크고 무거우며 비싼 사진기로 재미있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늘 새롭게 찍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질까요? 네,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사진기마다 쓰임새가 달라서 어떤 사진기를 쓰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에 따라서 사진이 가장 크게 달라진다고 느껴요.


  양해남 님은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라는 사진책에서 이 대목을 넌지시 다룹니다. ‘찍히는 사람’을 ‘찍는 사람’이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진다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찍히는 사람’을 ‘피사체’라고 하는 ‘사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찍히는 사람’을 ‘모델(내 사진을 빛내는 모델)’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찍히는 사람’을 ‘동무·이웃’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진다고 말해요.



지금 현재의 순간은 나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시간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보여주는 유일한 광경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온힘을 다해서 사진을 찍을 시간입니다. (121쪽)


하루 온 종일을 소비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도 얻을 수 없다면, 그냥 포기를 하는 것이 아늘까? 아니면 다음 날도 찍고 또 그 다음 날도 찍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도전을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130쪽)



  우리는 어떤 마음결이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쥘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씨가 되어 자동차 손잡이를 손에 잡을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바탕이 되어 밥을 짓거나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길까요?


  양해남 님은 ‘사진을 찍으려’고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몸짓은 안 반갑다고 밝힙니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을 ‘이웃’이 아닌 ‘사물(피사체)’로 바라보는 몸짓은 사진다운 이야기가 되기 어렵다고 하는 뜻을 밝힙니다. 그리고,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모델’도 아니라는 뜻을 밝혀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은 피사체도 모델도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에서 꾸준히 밝힙니다.


  이리하여, 양해남 님이 찍는 사진은 다른 사진가들이 빚는 사진하고 대면 ‘많이 어려울(어렵게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남 님은 ‘찍히는 사람한테 허락을 안 받고 무턱대고 먼저 찍고 보자’는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들(찍히는 사람)’은 ‘내 사진을 빛내는 소재’가 아니라 ‘나와 똑같이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능하면 이런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느리고 천천히 촬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그 공간에 머무르는 편을 선택합니다. (166쪽)


내가 찍는 사진의 무게를 생각하면 남의 사진을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불과 125분의 1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완성되는 한 장의 사진이라도 모든 예술작품과 동일한 무게인 것입니다. (176쪽)



  사진길을 걸은 서른 해를 되짚으며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고 털어놓는 양해남 님은 사진을 천천히 찍으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쓸 만한 사진을 한 장조차 건지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서두르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쓸 만한 사진 한 장 건지기’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반가운 이웃하고 동무를 만나는 삶’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줌마 사진가한테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배우고, 아이들한테서 맑게 노는 마음을 배웁니다. 새봄에 푸르게 돋는 싹과 꽃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숨결을 배웁니다. 흙을 만지며 살림살이를 손수 지어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마주하면서 고요하면서 너그러운 넋을 배웁니다.


  사진가는 으레 ‘찍는 사람’으로 여기기 마련이지만, 사진가라고 하는 자리는 수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꾸준히 수없이 다시 마주하는 동안 ‘배우는 사람’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거움을 배우면서 즐거움을 사진에 담고, 아름다움을 배우면서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으리라 느껴요. 사랑을 배우면서 사랑을 사진에 싣고, 기쁜 꿈을 배우면서 기쁜 꿈을 사진에 실으리라 느껴요. 맑은 눈짓을 배우면서 맑은 눈짓을 사진으로 옮기고, 밝은 웃음을 배우면서 밝은 웃음을 사진으로 옮기리라 느낍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이란 바로 “살림을 기쁘게 가꾸고 싶은 마음”이요, “사람을 아름답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며, “삶을 넉넉히 나누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2016.5.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사진가 양해남 님과 눈빛 출판사한테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