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뜨개인형을 읽기
곁님이 밤을 새워서 뜬 뒤 아이들한테 선물한 ‘얼룩말 손가락 뜨개인형’을 나도 손가락에 꽂아서 놀아 봅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한 번 놀면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밤을 새운 한 사람 손길이 깃든 이 뜨개인형은 아이들이 늘 만지면서 놀 만하고, 어른도 곧잘 함께 놀 만합니다. 이 뜨개인형을 손수 떴기에 더 애틋할 수 있고, 이 뜨개인형을 플라스틱 실이 아니라 면으로 된 실로 짰기에 더 살가울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오래도록 손수 품을 들인 놀잇감’을 선물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지은 놀잇감도 선물했을 테지만, 으레 이레라든지 열흘이라든지 달포라는 긴 나날을 들여서 한 가지를 마련했어요. 다시 말하자면 더 많은 놀잇감이 있어야 더 잘 놀 수 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은 손길로 찬찬히 바라보면서 지은 놀잇감일 적에 두고두고 놀 뿐 아니라,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고작 뜨개인형 하나라 할 수 있지만, 이 뜨개인형을 고이 아끼고 돌보면서 논다면 오래오래 물려주고 물려받다가 나중에 새로운 아이가 새롭게 뜰 수 있을 테지요. 우리 곁에 둘 만한 책도 이와 같을 테지요. 고이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새로운 노래를 일굴 만한 이야기를 다루도록 북돋우는 책 한 권이 있으면 넉넉하겠지요. 2016.5.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