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매미 작은 곰자리 4
후쿠다 이와오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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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3



물건을 훔치지 말고 땀을 훔쳐야지​

― 빨간 매미

 후쿠다 이와오 글·그림

 한영 옮김

 책읽는곰 펴냄, 2008.7.10. 9500원



  ‘훔치다’라는 낱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기나 때를 닦아서 말끔하게 하다”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 것을 몰래 가져다가 제 것으로 하다”를 가리켜요.


  두 낱말 가운데 ‘걸레질’에 쓰이는 ‘훔치다’가 조금 더 오래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림을 짓던 따사로운 나날에는 ‘다른 사람 것을 몰래 가져가는 일’이란 없었을 테니까요.



국어 공책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가 지우개를 훔쳤다. 전화를 받는 아줌마를 본 순간, 들고 있던 지우개를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1쪽)



  후쿠다 이와오 님이 빚은 그림책 《빨간 매미》(책읽는곰,2008)를 읽으면서 ‘훔치다’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집안을 치우거나 쓸고 닦으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방바닥을 훔치는 일은 즐겁습니다. 먼지를 훔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지요. 아이들은 어버이 손놀림을 어깨너머로 살펴보면서 야무지게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빨아 보려 하며, 꼬옥 비틀어서 쥐어짜려고도 해 봅니다. 아직 여린 아이들은 물짜기를 잘 해내지 못하지만 영차영차 하면서 물짜기를 하려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아하하 웃음이 나와요. “얘야, 그렇게 해서는 물을 못 짜겠는걸? 잘 보렴.” 하면서 가볍게 걸레를 비틀면 물이 주루룩. 아이들은 “우와!” 하고 외칠 뿐 아직 이렇게 못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아이들만 하던 때에는 물짜기를 잘 못 했습니다.



빨간 지우개가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매미를 집어 드는데, 날개가 파닥파닥 손가락에 부딪쳤다. 울컥해서 날개를 잡아뗐다. “이치!” 고우가 소리쳤다. (9쪽)



  그나저나 그림책 《빨간 매미》에 나오는 아이는 마을 문방구에서 ‘빨간 지우개’를 문득 훔치고 맙니다. 처음부터 훔칠 뜻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문방구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느라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릴 때에 한손에 쥔 빨간 지우개를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고 해요.


  주머니에 넣은 지우개를 다시 꺼냈으면 ‘훔치기’가 아닙니다. 문방구를 나온 뒤에 주머니에서 지우개를 꺼내고는 “어? 지우개가 여기 있네?” 하고는 문방구로 돌아가서, “아주머니, 제가 지우개를 주머니에 넣고 깜빡 잊었네요.” 하고 말씀을 여쭐 적에도 ‘훔치기’가 아니지요. 집으로 그대로 갔더라도, 다시 문방구로 달려가서 “아주머니, 아까 제가 지우개 값을 안 치렀어요. 이 지우개요. 그냥 주머니에 넣고 갔지 뭐예요.” 하고 말씀을 여쭐 적에도 ‘훔치기’가 아닙니다.



빨간 지우개를 훔치고 나서 유미랑 한 약속을 어겼다. 매미 날개도 잡아 뜯었다. 나는 자꾸만 나쁜 사람이 되어 간다. 아빠랑 엄마랑 유미도, 고우랑 다른 애들도 모두 나를 싫어하게 될 거다. 그런 건 싫다. 절대로 싫다. (23쪽)



  그림책 《빨간 매미》에 나오는 아이는 지우개를 훔친 날부터 몹시 시무룩하다가 짜증나다가 괴롭습니다. 동생하고 물놀이를 가기로 했지만 ‘지우개 훔친 일’이 떠올라서 불뚝 골을 부리면서 동생을 울립니다. 동무하고 매미를 잡으러 숲으로 갔다가 그만 ‘지우개 훔친 일’이 떠올라서 갑자기 매미 날개를 잡아뜯습니다.


  아이는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 말을 안 합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너무 밉고 싫고 괴롭고 짜증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를 못 믿고 안 좋아하고야 맙니다. 그리고 어느 날 꿈을 꾸지요. 날개가 사라진 빨간 매미가 나타나는 꿈이에요.


  자,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빨간 지우개 하나를 훔친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훔치기를 할까요? 아니면 문방구로 가서 아주머니한테 지난 일을 털어놓을까요? 아니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도움을 바라면서 지난 일을 털어놓을까요?


  물건을 훔치는 일은 ‘거저로 내 재산을 늘리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살림 늘리기’를 못 하지요. 땀을 훔치는 사람이 될 때에 재산을 늘리거나 살림을 늘립니다. 물건이 아닌 땀을 훔치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홀가분하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바라요. 다 함께 사랑스레 손을 맞잡고 춤출 수 있는 삶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6.5.6.쇠.ㅅㄴㄹ


(최종규 / 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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