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를 담근 하루



  한 달 남짓 만에 깍두기를 새로 담근다. 어제 읍내에서 무를 한가득 장만했는데 생강을 빠뜨렸다. 양념거리를 집에서 손수 심어서 돌보면 빠뜨릴 일이 없이 그냥 마당에서 슥슥 뽑거나 잘라서 쓸 텐데, 아직 그만큼까지는 안 된다. 마당 한쪽에 생강밭이 조그맣게 있어야겠구나. 아무튼 낮에 무를 잘 씻어서 숭숭 썰고서 소금으로 절였다. 저녁에 풀을 쑤고 양념을 마련하면서 감자버섯조림을 했고 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였다. 가만히 한숨을 돌리면서 기운을 모은 뒤에 맨손으로 씩씩하게 석석 버무렸다. 마늘을 빻다가 에고 허리야 하면서 쉬엄쉬엄 일을 했다.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서 설거지까지 마치니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했지만, 마음을 곧 다스리면서 ‘나는 늘 튼튼하고 기운차다네’ 하고 속삭였다. 아무렴, 밭일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이 일도 저 일도 다 해낼 수 있지. 오늘은 원고 교정을 얼마 못 보았지만, 또 아이들하고 숲마실도 못 갔지만, 이튿날에는 밭일을 조금만 하고 아이들하고 숲마실을 가자고 생각한다. 깍두기를 담가서 보람찬 오늘 내 마음은 꼭 모과꽃과 같다. 2016.4.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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