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제국사 - 고대 로마에서 G2 시대까지 제국은 어떻게 세계를 상상해왔는가
제인 버뱅크.프레더릭 쿠퍼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9



찔레무침 한 접시와 ‘식민지 제국’ 이야기

― 세계제국사

 제인 버뱅크·프레더릭 쿠퍼 글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2.5. 36000원



  사월은 삼월하고 다른 봄입니다. 겨울이 저무는 이월 끝자락부터 뒤꼍하고 마당에서 쑥이 돋기에 그무렵부터 쑥을 뜯어서 버무리나 부침개를 해서 먹었고, 때로는 밥에도 넣어서 쑥밥을 먹었어요. 삼월로 접어든 뒤에는 다른 나물을 훑어서 먹었고, 바야흐로 사월이 되면서 모시잎을 훑은 뒤 잘게 썰어서 모시밥을 지었으며, 무럭무럭 돋는 찔레싹을 신나게 훑어서 찔레무침을 합니다. 사월 한복판에 싱그러이 돋는 찔레싹을 잘 헹군 뒤에 한 줌은 그대로 고추장으로 무치고, 다른 한 줌은 살짝 데쳐서 된장으로 무칩니다. 무럭무럭 돋으려는 봄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려는 아이들한테 더없이 반가우면서 고마운 밥이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마 먼 옛날부터 새봄에 누구나 이 봄밥을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서는 이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 나라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지요. 또 북중미나 남미라든지 유럽에서는 그곳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고요.



대다수 제국처럼 로마도 처음에는 정복을 했다. 그러나 통제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과제는 폭력만이 아니라 인적·경제적 자원과 중앙권력을 계속 연결하는 일에도 달린 문제였다. (49쪽)


교육은 더 높은 신분과 더 많은 재물을 얻는 길로써 새로운 피와 사상을 끌어들였고, 사회의 상향 유동성을 상당히 높여 주었으며, 지방의 엘리트와 부유한 가문을 제국의 중앙으로 포섭했다. 그러나 교육은 이따금 폐단도 낳았다. 학식에 대한 특권적 접근, 시험과 관직 배정의 편파성, 등용 시험을 함께 통과한 관리들의 파벌, 도식적으로 통치하는 경향 등이 그것이었다. (89쪽)



  제인 버뱅크 님하고 프레더릭 쿠퍼 님이 함께 글을 써서 선보인 《세계제국사》(책과함꼐,2016)라는 두툼한 책을 봄날에 읽습니다. 봄바람을 마시면서 ‘세계제국’ 이야기를 돌아보고, 봄볕을 쬐면서 ‘세계제국’이 이 지구별에 남기려 했던 발자국을 되새깁니다.


  제국을 이루었다고 하는 나라들을 살피면 하나같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그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것들을 ‘함부로 가로채거나 훔쳐서 제 것으로 삼기 일쑤’였구나 싶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한테 없으나 이웃한테 있는 것’을 가로채거나 빼앗아서 ‘내가 혼자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마음’에서 전쟁무기와 군대를 일으키고, 이 전쟁무기와 군대를 바탕으로 자꾸자꾸 땅과 힘을 키운 제국 발자취라고 할까요.



전쟁의 주안점은 약탈, 전리품 분배, 더 많은 전리품을 얻기 위한 진격이었다. (156쪽)


몽골족은 상업 활동에 투자하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고속 운송 및 통신 체계를 유지하고, 상인과 장인을 보호하고, 관행으로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장거리 교육을 실행하고 상상할 지평을 넓혀 주었다. 몽골족은 중국인과 달리 상인에 대한 양가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173쪽)



  《세계제국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제국’을 헤아려 봅니다. 제국이 된 모든 나라는 참말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늘리는 일에 돈과 힘과 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무기와 군대를 발판으로 삼아서 전쟁무기나 군대가 적거나 없는 이웃나라를 손쉽게 짓밟거나 무너뜨렸다고 해요. 그런데 전쟁무기나 군대는 엄청나게 거느린 제국은 모두 똑같이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워낙 전쟁무기나 군대를 크게 키워 놓다 보니까, ‘전쟁무기와 군대를 유지하는 돈’도 엄청나게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제국은 모두 ‘식민지 사업’을 멈출 수 없었고, ‘군대를 거느리는 장군’한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흐름이다 보니 자꾸자꾸 새로운 전쟁과 정복으로 나아갈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제국이 된 모든 나라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친 돈과 힘과 품을 전쟁무기나 군대에 하나도 안 들였다면 어떠했을까 하고요. 그 엄청난 돈과 힘과 품을 ‘사람들 살림살이를 가꾸는 길’에 썼다면, 군대를 키워서 ‘군대 유지비’만으로도 나라살림이 거덜날 만한 경제가 되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오순도순 즐겁게 마을살림을 가꾸도록 하는 경제’가 되는 길을 걸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말이지요.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고립 영토, 대양과 대륙을 넘나드는 강압과 상업을 통해 획득한 자원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커다란 영토를 정복하여 차지했고, 뒤이어 아프리카인의 노동, 아메리카의 토지, 유럽의 시장을 연계하여 이익을 얻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노예를 생포하는 일은 무대 밖에서, 아프리카 정치체들이 전쟁을 벌이고 습격하는 와중에 일어났다. (241쪽)


영국 제국과 프랑스 제국에서,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과 에스파냐 제국의 일부 지역에서 제국에 이익을 가져다준 것은 노예제였고,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제국이었다. (272쪽)



  전쟁무기나 군대를 키우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제국’이 안 되었으리라 느껴요. 전쟁무기나 군대를 안 키웠다면, ‘제국 발자국’을 안 남겼을 테고, 우리가 세계사나 한국사에서 배우듯이 ‘땅을 넓히거나 빼앗기는 흐름’도 없었을 테지요. 전쟁무기나 군대를 키우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나라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 쳐들어가거나 쳐들어올 일이 없을 테니까 ‘국경이 없이도 평화로운 삶’을 이룰 만했을 테고, ‘국경이 없이 서로 즐겁게 교류를 하는 아름다운 살림’을 이룰 만했으리라 느낍니다.


  ‘국경 분쟁’ 같은 일은 제국이라는 틀로 정치를 꾸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할까요? 제국이라는 틀이 따로 없다면, 작은 마을 사람들은 어느 정치권력자가 나라를 세운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작은 마을 사람들은 봄에는 봄나물을 훑고 땅을 갈아서 씨앗을 심어요. 작은 마을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으면서 지내요. 작은 마을 사람들은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살지요. 총이나 칼이 없어도 평화롭기 마련인 작은 마을이요, 싸움이나 다툼조차 없이 서로 돕고 아끼는 두레와 품앗이가 이루어지는 작은 마을이에요.


  무엇보다도 작은 마을은 언제나 자급자족을 이루어요. 정치나 경제가 어떠하더라도 작은 마을에서는 스스로 삶과 살림을 지으니, 스스로 심고 거두어서 밥을 먹고 옷을 지으며 집을 가꾸어요. 작은 마을일 적에는 이웃으로 쳐들어가지 않아요. 작은 마을이기에 ‘이웃으로 그릇을 들고 가’지요. 그릇에는 집집마다 맛나게 지은 밥을 담아서 다 함께 즐겁게 나누려고 이웃을 사귀어요.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예를 필요로 한 것은 제국들의 역사에서 별반 새롭지 않은 일이었다. (344쪽)


아이티의 독립은 세계의 제국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아아티는 해방과 탈식민지화의 선봉일까? 아니면 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위험의 상징일까? (346쪽)



  나는 《세계제국사》를 읽으면서 ‘제국’을 이룬 나라는 이웃을 모른 채 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옆에 있는 나라나 마을을 ‘이웃’으로 여겼다면 이 ‘이웃’한테 전쟁무기나 군대를 이끌고 들어갈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 참말로 옆에 있는 나라나 마을을 이웃으로 여긴다면, 총칼을 앞세워서 윽박지르는 짓이 아니라 ‘맛난 밥을 그릇에 담은 사랑스러운 손길’로 찾아가겠지요.


  나한테 있는 넉넉한 것을 이웃한테 줄 때에 ‘교류’가 됩니다. 너한테 있는 넉넉한 것을 받으면서 하하하 웃을 적에 ‘이웃사랑’이 됩니다. 《세계제국사》라는 책에서는 ‘일본 제국’ 이야기도 조금 나오지만, ‘식민지 조선’ 이야기는 몇 줄 안 나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일본이 제국이 되어 이웃 여러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은 ‘유럽 여러 나라가 제국이 되어 지구별 여러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에 대면 아주 작다고 할 만하거든요. 중국이나 몽골이 제국이 되어 수많은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에 대어도 아주 작다고 할 만하고요.


  그렇지만,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가 되어 겪어야 한 아픔이나 생채기는 작지 않습니다. 지구별 모든 ‘식민지 나라’는 그야말로 끔찍하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곧 《세계제국사》라는 책은 ‘여러 제국 역사’뿐 아니라 ‘여러 식민지 역사’를 함께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제국이 일어나면서 무시무시한 전쟁무기와 군대를 뽐낸 발자국이란, 평화롭고 작은 수많은 마을이 아프게 짓밟힌 발자국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국가를 재형성하거나 형성할 때 누구의 권리를 중요하게 고려했을까? (495쪽)


군대와 관료제의 수준을 높이려면 새로운 교육 기준이 필요했다. 행정을 훈련시키는 과제는 재상이나 명사의 가정에서 교육기관으로 넘어갔으며, 교육기관은 인구와 중앙을 더 효과적으로 연결할 새로운 부류의 관료층을 길러내고자 했다. (511쪽)



  봄날 아침에 나는 우리 집 뒤꼍에서 찔레싹을 훑었습니다. 쑥을 훑을 적에는 아이들이 돕지만, 찔레싹을 훑을 적에는 혼자 합니다. 아무래도 찔레 가시 때문에 아이들한테 찔레싹을 함께 훑자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아직 작고 여린 아이들은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 찔레싹을 훑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커다란 소쿠리로 찔레싹을 잔뜩 훑은 뒤에 한 소쿠리는 살짝 데칩니다. 다른 한 소쿠리는 날찔레를 고추장으로 무칩니다. 아이들은 새봄 찔레무침을 맛나게 먹어 줍니다. 아이들 입에서 ‘맛있어!’ 하는 말이 터져나올 적에 ‘찔레 가시에 찔리며 새싹을 훑은 보람’을 느낍니다. 찔레무침을 넉넉히 했기에 큰 접시에 가득 담아서 마을회관으로 가져갑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마을회관에 도란도란 모여서 낮밥을 함께 드셔요. 할머니들도 한 젓가락씩 자시라고 찔레무침을 드립니다.


  싱그러운 봄나물을 훑고 무쳐서 먹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세계제국사》에 나오는 ‘제국이 된 나라’를 보면, 하나같이 ‘남쪽으로 내려가서 식민지를 넓히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역사책에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만, 어쩌면 ‘제국 권력자’들은 추운 고장에서 봄나물이 너무 그리워서 자꾸자꾸 남쪽으로 손길을 뻗으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어떤 제국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이 봄에 싱그러운 봄나물 한 접시를 받고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눌 수 있었으면, 모든 전쟁무기는 내려놓고 호미랑 가래랑 괭이를 쥐고서 밭을 일구며 씨앗을 심는 즐거운 두레살림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2016.4.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