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정환 옮김 / 삼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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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6



달빛에 어린 매화꽃잎 같은 시를 읽다

― 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

 에드거 앨런 포 글

 김정환 옮김

 삼인 펴냄, 2016.3.3. 12000원



  새벽에 일어나서 뒤꼍에 서는데 샛노란 달이 저쪽 하늘에 있습니다. 아주 동그란 보름달입니다. 구름이 제법 짙게 꼈으나 아주 동그란 보름달이 내뿜는 환한 빛이 몹시 짙습니다.


  달빛이 살며시 어리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뒤꼍에 서서 매화나무를 바라봅니다. 새봄에 잎보다 먼저 피어난 작고 어여쁜 꽃송이는 하나둘 떨어집니다. 마치 눈발처럼 날리는 꽃잎은 ‘꽃눈’이나 ‘눈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송이는 아쉬움 하나 남기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서 곱게 춤추면서 뒤꼍을 꽃잎밭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산 흙에서 내가 처음 들이쉬었다, 생명을: / 테를레이의 안개가, 흘렸다 / 밤마다 이슬을, 내 머리 위에. (타메를란)


네 영혼이 보니 그 자신 홀로일 게다 / 잿빛 묘석의 어두운 생각들 와중― / 어느 하나, 그 모든 무리 중, 엿보지 않는다 / 내 비밀의 시간을. (죽은 자 유령들)



  에드거 앨런 포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삼인,2016)을 읽으면서 삶이란 어떤 무늬나 결인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되짚습니다. 한국말로 옮기기 퍽 까다로웠겠구나 싶은 에드거 앨런 포 님 시를 읽으면서, ‘시 전집’이라고 하지만 모두 48꼭지에 140쪽 부피인 자그마한 시집을 읽으면서, 달빛이 어리면서 춤추듯이 떨어지는 매화꽃잎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시 한 자락은 달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꽃잎과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 두 자락은 꽃잎이 가득 떨어진 밭자락을 꽃삽으로 파면서 노는 아이들 손놀림하고 같지 않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시 세 자락은 밥 한 그릇 맛나게 비우고는 새롭게 놀이를 찾아서 마당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 낯빛하고 같지 않을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아! 무엇이 백일몽 아니겠는가, / 그, 두 눈이 자기 주변 사물을 / 바라보는 그 광선이 / 과거로 돌려져 있는 사람한테? (꿈 (2))


소리가 좋아한다 여름밤 한껏 즐기는 것을: / 들어보라구 속삭임, 잿빛 황혼의, / 살그머니 스며들던, 귀, 에이라코에서. (알 아라프)



  《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을 읽으면서 ‘한국말로 옮긴 글’ 말고 ‘영어로 적힌 글’이 무척 궁금합니다. ‘시 전집’이기도 하고, 시 갯수가 그리 많지 않다면, 또 한국말로 옮기기 무척 까다롭다고 한다면, 영어로도 함께 실어 놓으면 이 까다롭다고 하는 영시를 조금 더 새로우면서 깊게 돌아볼 만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에서는 ‘:’라든지 ‘―’ 같은 기호를 곳곳에 넣으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거든요. 글로 적힌 말인 시이기도 하기에, 어떠한 숨결과 넋으로 이렇게 온갖 기호를 수없이 넣고 글꼴도 바꾸어 가면서 시를 썼는가 하는 대목을 민낯(영어 원문)으로도 나란히 놓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한국말하고 서양말은 말짜임이 달라요. 그래서 서양말로 나온 시를 서양말 짜임새대로 옮기면, 이 영시를 한국사람이 읽다가 숨이 턱 막히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소리가 좋아한다 + 여름밤 한껏 즐기는 것을”이라든지 “들어보라구 속삭임 + 잿빛 황혼의”처럼 쓸 테지만, 한국말은 이러한 짜임새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말을 영어로 옮기면 어떤 꼴이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아야지 싶어요. 한국시를 영시로 옮길 적에 ‘한국말 짜임새’대로 옮길까요, 아니면 ‘영어 짜임새’대로 옮길까요? 낱말만 영어로 적으면 되는 한국시일까요, 아니면 낱말도 말투도 말결도 영어대로 적으면 마음으로 느껴서 읽을 수 있는 한국시가 될까요.



꺼졌다―꺼졌다 빛들―꺼졌다 모두! / 그리고, 각각의 떨리는 형태 위로. (정복자 벌레)


내가 대답했다: “이건 꿈꾸는 것에 불과해. / 우리 계속하자구 이 떨리는 빛으로! / 우리 멱감자구 이 수정의 빛으로! (울랄루메―발라드 하나)



  에드거 앨런 포라는 분은 1809년에 태어나 1849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길다고 하면 길 테지만, 짧다고 하면 아스라이 짧다고 할 만한 발자국입니다. 스물일곱 살 나이에 열세 살 사촌 여동생하고 짝을 지어서 살았다 하고, 열세 살 사촌 여동생은 열여덟 살 즈음부터 결핵을 앓아 몸져누웠다 하며, 에드거 앨런 포 님은 퍽 어릴 적부터 술에 기대어 살았다고 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 시전집》에 흐르는 이녁 싯말은 모두 이녁 스스로 걸어온 길에서 하나하나 적바림한 이녁 삶이지 싶습니다. 눈물도 담고 웃음도 담고 괴로움도 담고 술내음도 담는구나 싶습니다. 환한 웃음도 담고 시커먼 눈물도 담아요. 죽음보다 괴로운 삶도 담으며, 술방울로 이 삶을 잊으려고 하는 몸부림도 담고요.



“좀체 우리가 볼 수 없지.” 말씀하신다 솔로몬 저능아 씨가. / “되다 만 생각을 가장 심오한 소네트에서 / 엉성한 것들 전부를 한목에 꿰뚫어 우리가 보잖나 즉시 / 손쉽기 나폴리 보닛을 통해 보는 것과도 같이― (수수께끼)


내가 애석한 것은 쓸쓸한 자들이 / 나보다 더, 사랑아, 행복해서 아니고 / 네가 슬퍼해서다 나의 운명, / 지나가는 자인 나의 그것을. (―에게 (2))



  새벽은 곧 저뭅니다. 바야흐로 아침입니다. 해님은 온누리를 골고루 비추면서 따스한 기운까지 골고루 베풉니다. 아픈 이한테도 튼튼한 이한테도 모두 똑같은 해님입니다. 어린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모두 똑같은 해님이에요.


  바람도 골고루 붑니다. 바람은 시골에만 불지 않아요. 바람은 서울에도 부산에도 고흥에도 익산에도 불어요. 바람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미국에도 불지요. 이 지구라는 별에 사는 누구나 똑같은 해랑 바람을 먹으면서 살아요. 그리고, 해님이 지는 밤이 되면 누구나 똑같은 별빛을 받으면서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고요.



흐릿한 계곡들―그리고 그늘진 큰물― / 그리고 구름처럼 보이는 숲, / 그런데 그 형태를 우리가 발견할 수 없다 / 눈물, 온통 뚝뚝 흘러내리는 그것 때문에: / 엄청난 달들이 거기서 차고 이지러진다― (요정의 나라)



  달빛이 어리는 꽃잎 같은 시를 읽습니다. 수수께끼가 가득한 시를 읽습니다. 실마리를 찾을 길이 없다고 여기면서 헤매는 듯한 몸부림을 느끼면서 시를 읽습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아침밥을 차리려 합니다. 쌀을 씻어서 불리고, 국거리를 손질합니다. 마당에서 뜯은 풀을 다듬고, 찬찬히 솟는 해를 바라보면서 하루 일을 헤아립니다. 텃밭에 콩을 심기 앞서 갓을 솎아서 갓김치를 담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밥을 짓고 김치를 담는 동안 아이들은 오늘 하루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마당이며 뒤꼍이며 홀가분하게 뛰고 달리겠지요.


  꿈을 꾸듯이 하루가 찾아오고, 꿈을 꾸는 사이에 하루가 저물어요. 이 하루를, 이 삶을, 이 살림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에드거 앨런 포 님은 이녁 스스로 “지나가는 자”라고 여깁니다. 아마 나도 이 삶을 지나가는 숨결 가운데 하나일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이 삶을 어떻게 지나갈 적에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 하루가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즐거운 꿈으로 아로새길 수 있도록, 오늘 하루에 즐거운 노래가 흐를 수 있도록, 새삼스레 몸짓을 가다듬어 봅니다. 2016.3.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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