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을 함께 읽는 아버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이 즐거우니 이 책을 읽습니다. 만화책을 읽거나 시집을 읽는다면 만화책이나 시집이 즐겁기 때문일 테지요. 소설책이 즐거운 사람은 소설책을 읽듯이, 나는 어린이책이 즐거우니까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나로서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살려는 하루이기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린이다운 마음을 어른으로서도 고이 다스리고 싶어서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늘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싶기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테지요. 우리 살림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는 나날이기도 해서 어린이책을 읽지만, 스스로 어린이다운 꿈과 사랑을 한결같이 다스리고 싶어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내 어린 날을 문득 돌아보니, 내가 어릴 적에는 내 곁에서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은 좀처럼 못 보았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책을 안 읽으’니까 우리한테 ‘어떤 어린이책을 읽히면 아름다운가’를 거의 알지 못했지 싶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이나 명작도서 목록은 뽑아서 읽히려 하고 독후감 숙제를 내라 했으나, 막상 어린이책을 어린이가 읽으면서 어느 대목에서 기쁨을 누릴 만한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글씨가 큼직하거나 그림을 많이 곁들여야 어린이책이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그림 하나 없거나 글씨가 잘아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어린이책에 사로잡힙니다. 글꼴이나 그림은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재미없이 글꼴을 키우고 그림만 많이 넣는다면, 이런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한 번쯤 손을 댄 뒤에는 다시 건드리지 않기 마련입니다. 글씨가 잘고 그림이 없더라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아이들은 책이 낡고 닳도록 다시 읽고 거듭 읽기 마련이에요.


  두고두고 깨끗하게 모셔 둘 책이 아니라, 그야말로 종이가 너덜너덜 낡고 닳을 만한 어린이책을 즐겁게 찾아서 읽습니다. 이 책 하나를 곁에 두면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하나를 발판으로 삼아서 마음에 사랑을 가득 가꾸는 길을 엿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찾고 꿈을 그리면서 살림을 웃음꽃으로 일구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살고자 오늘도 신나게 어린이책을 두 손에 곱게 쥐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2016.3.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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