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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추 ㅣ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44
구도 나오코 글, 호테하마 다카시 그림, 이기웅 옮김 / 길벗어린이 / 2015년 3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30
새봄에 만나는 샛노란 꽃물결이 곱네
― 작은 배추
구도 나오코 글
호테하마 다카시 그림
이기웅 옮김
길벗어린이 펴냄, 2015.3.1. 1만 원
배추랑 유채랑 갓은 ‘한집 이웃’이라고 할 만합니다. 서로 엇비슷한 풀이나 남새라 할 수 있어요.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하는 배추포기에서는 장다리가 솟고, 이 장다리에 꽃이 피어요. 배추에 피는 꽃이니 ‘배추꽃’인데, 이 꽃은 ‘장다리꽃’이라고도 해요. 샛노랗게 눈부신 꽃이랍니다.
요즈음은 배추를 먹는 사람은 많아도 배추꽃을 보는 사람은 드물 텐데, 옛날에는 누구나 밭자락에 배추를 심어서 거두었으니 옛날에는 누구나 배추꽃을 보았어요. 새봄에 맞이하는 따사로운 볕과 함께 샛노란 배추꽃은 무척 고와요. 그리고, 이 배추꽃처럼 유채꽃이랑 갓꽃이 곱지요. 가을에는 노랗게 익어서 나락물결이 인다면, 봄에는 노랗게 피어나는 꽃으로 꽃물결이 일어요.
어느 날, 감나무 밑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감나무가 내려다보니, 바람에 날려 왔는지 배추 떡잎 하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습니다. (4쪽)
구도 나오코 님이 글을 쓰고, 호테하마 다카시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작은 배추》(길벗어린이,2015)를 읽으면서 우리 집 유채랑 갓을 바라봅니다. 새봄을 앞두고 우리 집 깍두기를 담갔는데,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는 갓이랑 유채를 뜯어서 함께 담갔어요. 갓으로는 따로 갓김치도 담그는데, 갓잎을 잘 헹군 뒤에 깍두기하고 버무리면 새롭게 싱그러운 맛입니다.
참말 배추나 갓이나 유채는 남새나 풀로 우리한테 고마운 밥이 되어 줄 뿐 아니라, 봄마다 노란 꽃물결로 반가운 숨결이 되어 주어요. 남새로 맞이해서 먹을 적에는 몸을 살찌우고, 꽃으로 바라보며 쓰다듬을 적에는 마음을 한껏 북돋아요.
“다들 어디 가는 거야?” 작은 배추가 몸을 쭉 뻗어 트럭을 건너보았습니다. “채소 가게로 가지.” 감나무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은 배추도 따라가고 싶어서 트럭 아저씨에게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배추는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10쪽)
그림책 《작은 배추》에는 ‘작은 배추’가 나옵니다. 작은 배추는 좀처럼 밭지기 손길을 타지 못한다고 합니다. 작기 때문에 이 작은 배추를 사 갈 사람이 없을 듯하다고 여겨서 늘 밭에 남아요. 밭에 남은 작은 배추는 곁에 있는 우람한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궁금한 이야기를 묻습니다. 이것은 뭐고 저것은 무엇인지 물어요. 배추란 무엇이고 감이란 무엇인지 묻지요. 감나무는 그동안 살아낸 나날만큼 어린 배추한테 이야기를 베풉니다. 이제 막 깨어난 어린 배추는 커다란 감나무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요. 참말 어린 배추한테는 모두 새롭거든요.
두해살이풀인 배추로서는 ‘두 해짜리 목숨’이니까 참말 해마다 모든 것을 새로 배우겠지요?
밭에 있던 배추들은 모두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트럭 아저씨가 작은 배추를 톡톡 토닥였습니다. “좀 작은가? 그래, 넌 여기서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워 나비랑 놀려무나.” (18쪽)
첫 해에는 다른 배추보다 크기가 작아서 배추밭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야 한 작은 배추는 홀로 겨울을 납니다. 동무 배추하고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해 슬프고 서운하지만 감나무가 알려준 ‘꽃’ 이야기를 듣고는, 또 나비하고 봄 이야기를 듣고는, 작은 배추가 앞으로 무럭무럭 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금 기운을 차리기로 해요. 그리고 감나무 말대로 고요히 겨울잠을 자기로 하지요.
작고 어린 배추는 겨우내 눈을 옴팡 뒤집어쓰면서 고요히 자요. 눈바람이 몰아치든 눈보라가 일든, 뿌리를 단단히 땅에 박고는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잎을 겹겹이 포갠 채 웅크린 작은 배추는 갖은 추위를 씩씩하게 이기지요.
우리가 먹는 봄동은 바로 겨울을 이겨낸 남새이자 풀이에요. 겨울 숨결을 가득 담으면서도 봄내음을 품에 안은 봄동이라고 할 만해요. 그래서 새봄에 봄동을 먹으면 한결 따스한 기운이 솟는다고 하리라 느껴요.
“봄이 뭐야? 꽃은? 나비는 또 뭐야?” 작은 배추가 울먹울먹 감나무한테 물었습니다. “봄이 되면 해님이 네 곁에 바싹 다가와. 그러면 포개 있던 속잎이 활짝 펼쳐지며 쑥쑥 크지.” “쑥쑥 큰다고? 나도?” “그럼! 꼭대기에 노란 꽃도 가득 피지. 햇살 닮은 나비가 왁자지껄 모여든단다. 얼마나 즐거운지 아니?” (22쪽)
아주 작은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납니다. 이 애벌레는 잎사귀를 갉아먹으면서 몸을 키웁니다. 어느 만큼 큰 애벌레가 되면 이제 번데기가 되면서 고요히 잠들어요. 얼추 한 달 가까이 잠을 자면서 꿈을 꾸지요. 새롭게 태어나는 꿈을 꾸어요.
작은 배추도 겨우내 석 달 즈음 잠을 자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꿈을 꿉니다. 감나무 말대로 꽃을 피우겠다는 꿈을 꿉니다. 두해살이풀인 배추로서는 이제 한 살이 지나고 두 살째이니, 꽃이 무엇인지 몰라요. 겪거나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새봄에 배추 한복판에서 솟아난다고 하는 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이 수수께끼를 기쁘게 풀자는 마음으로 잠들면서 꿈을 꾸어요.
차가운 바람이 그치고 따스한 볕이 들면서, 해가 높아지면서, 바야흐로 온갖 들꽃이 깨어나면서, 배추도 천천히 잎을 벌립니다. 벌린 잎 한복판에서 장다리가 솟습니다. 이 장다리에 몽글몽글 뭔가 맺힙니다. 아하, 꽃봉오리가 맺히는군요. 이 꽃봉오리는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더없이 새롭게 깨어나요. 봄을 부르는 수많은 들꽃처럼 배추도 배추꽃을 노랗게 터뜨리면서 봄이 한결 따스하기를 바라는 노래를 불러요.
그림책 《작은 배추》는 자그맣고 어린 배추가 겨울나기를 해내면서 피우는 노란 꽃물결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기쁘게 웃음을 지으며 벌하고 나비를 부르는 어여쁜 배추 한 포기 이야기를 보여주어요. 2016.3.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