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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 ㅣ 무지개 물고기
마르쿠스 피스터 글, 그림 |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9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5
엉뚱하게 넘겨짚으니 서로 다투네
―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
마르쿠스 피스터 글·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9.9.1. 12000원
마르쿠스 피스터 님이 빚은 “무지개 물고기 이야기” 그림책 가운데 하나인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시공주니어,1999)를 읽습니다. 무지개 물고기를 둘러싼 바닷마을 이야기 가운데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에는 고래가 나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고래를 몹시 좋아합니다. 곁님도 나도 고래를 좋아해요. 이러다 보니 고래가 깃든 그림책을 더 눈여겨보고, 고래가 하는 몸짓을 가만히 그려 보곤 합니다.
어느 날 점잖아 보이는 늙은 고래 한 마리가 바위 옆을 지나다가 아예 그곳에 눌러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맛있는 크릴이 아주 많은 곳이라 더 바랄 게 없었거든요. 게다가 반짝이는 물고기들에 둘러싸여 지낸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6쪽)
무지개 물고기를 비롯한 온갖 물고기는 무척 조용하면서 아늑한 바닷마을에서 살아요. 먹이도 넉넉하고 물살도 알맞으며 물결도 포근하지요. 그야말로 날마다 더없이 즐거운 삶이라고 할 만합니다. 물고기는 저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돕는 하루를 누려요.
어느 날 흰수염고래가 이 바닷마을로 찾아와요. 고래는 늘 먼 바닷길을 헤엄쳐서 다니잖아요. 무지개 물고기가 동무들하고 사는 바닷마을도 지나가겠지요. 그런데 무지개 물고기가 사는 바닷마을에 있는 물고기는 흰수염고래를 무서워합니다. 엄청나게 큰 덩치인 고래이니 겉보기로도 무섭고, 엄청나게 큰 덩치에 엄청나게 큰 눈으로 저희(여느 물고기)를 빤히 쳐다보니 더욱 무섭습니다.
더욱이 고래는 작은 물고기가 서로 속삭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소리가 너무 작으니까요. 작은 물고기는 커다란 고래가 읊는 말을 못 알아듣지요. 소리가 너무 크니까요. 그러고 보면 그렇잖습니까. 사람은 개미가 주고받는 말을 못 알아듣고, 개미도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못 알아들어요. 서로 소릿결(음역대)이 다르니까요.
어느 날, 고래는 반짝이는 물고기 떼에 바싹 붙어 헤엄쳤습니다. 더럭 겁이 난 톱니 지느러미 물고기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조심해! 못된 고래가 우리를 잡으러 왔다!” 그 소리를 듣자 고래는 무척 마음이 상했습니다. (12쪽)
흰수염고래가 무지개 물고기가 사는 바닷마을에 머물더라도 먹이는 그리 줄지 않습니다. 여느 물고기는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흰수염고래가 자꾸 저희를 쳐다보니 거북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무서움을 많이 타는 톱니 지느러미 물고기가 큰 소리로 ‘못된 고래’라며 덜컥 외치고, 고래는 이 소리를 듣습니다. 고래로서는 작은 물고기마다 하나씩 붙은 반짝이는 비늘이 고와서 이 비늘을 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이 좋은 나머지’ 이 바닷마을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다는데, 그만 마음이 다쳐요.
아무래도 덩치가 너무 다르니, 서로 말을 못 섞은 탓이겠지요. 고래도 여느 물고기한테 말을 제대로 걸지 않거나 못 했고, 여느 물고기도 고래한테 말을 제대로 걸지 않거나 못 했어요. 서로 어떤 마음인가를 주고받지 않았어요. 서로 어떤 생각인가를 똑똑히 밝히지 못 했어요. 이러면서 괜히 한쪽은 무서워서 덜덜 떨고, 괜히 한쪽은 터무니없는 미움을 사서 마음이 다칩니다.
무지개 물고기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얘기 좀 해요. 우리가 싸우는 바람에 얼마나 문제가 심각해졌는지 아세요? 크릴이 놀라 모당쳐서 모두가 굶게 됐잖아요.” (21쪽)
다툼이나 싸움은 서로 마음이나 생각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지 싶어요. 서로 다른 마음이거나 생각이기에 다투거나 싸운다고도 하지만, 마음이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똑똑히 모르기에 그만 ‘엉뚱하게 짚으면서 사이가 벌어지’는구나 싶어요.
마음을 닫으니까 다투지요.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 싸우지요. 생각을 털어놓지 않으니까 다툼이 불거지지요. 생각을 홀가분하게 주고받지 못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지요.
고래는 고래대로 으르렁거립니다. 여느 물고기는 여느 물고기대로 고래를 나쁘게만 바라봅니다. 둘은 서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막상 둘은 서로 아무것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지 않았는데, 지레 넘겨짚은 탓에 사이가 벌어지고 말아요.
그림책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를 보면, ‘무지개 물고기’가 씩씩하게 흰수염고래한테 다가섭니다. 다른 물고기는 모두 벌벌 떨면서 숨지만, 무지개 물고기는 커다란 고래를 무서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왜 서로 다투면서 조용하고 아늑한 바닷마을이 무시무시하고 메마른 곳으로 바뀌고 말았는지를 알아보아야겠다고 여겨요. 얼른 이 일을 풀고 예전처럼 아름다운 마을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요.
무지개 물고기와 친구들은 새로 사귄 거대한 흰수염고래의 보호를 받으며, 크릴이 많이 모여 있을 만한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무엇 때문에 그런 끔찍한 싸움을 벌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25쪽)
지레 어림한 대목은 말 몇 마디로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어떤 속마음인가를 모르는 채 지레 어림하기만 했으니까요. 속마음을 알고 난 뒤에는 서로 부끄럽기 마련이에요. 사이좋게 지낼 동무라면 섣불리 넘겨짚지 말아야겠다고 느끼리라 생각해요. 즐겁게 가꾸는 삶을 바란다면 함부로 넘겨짚지 말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그렇습니다. 서로 동무가 되려면 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어야 해요.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도 서로 스스럼없이 마음을 여는 사이가 될 때에 즐겁습니다. 두 어버이도 서로 아끼는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이야기꽃을 피워야 오순도순 기쁜 나날을 이루겠지요.
전쟁무기나 군대를 앞세워 으르렁거려 보아야 조금도 평화로울 수 없어요. 어깨동무를 할 때에 평화롭고, 손을 맞잡고 웃을 수 있어야 평화로울 수 있어요. 고개를 돌리기만 해서는 하나도 평화롭지 않아요. 얼굴을 마주보면서 마음을 홀가분히 털어놓고 생각을 주고받아야 평화로운 살림이에요.
삶도 살림도 사랑도 온통 고운 무지개빛으로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챡 《무지개 물고기와 흰수염고래》를 찬찬히 읽습니다. 말 한 마디를 잘못 꺼내면서 그야말로 미워하는 사이가 될 수 있고, 말 한 마디를 허물없이 나누면서 더없이 믿음직한 사이가 될 수 있어요. 마음을 상냥하게 담아서 나누는 말은 언제나 꽃이 되어 새롭게 피어납니다. 2016.2.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