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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히로시마
존 허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8월
평점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6
늘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 불구덩이
― 1945 히로시마
존 허시 글
김영희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5.8.6. 11000원
1914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존 허시 님은 열 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다가, 전쟁이 지구별을 휩쓸 무렵 종군기자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 해가 지날 무렵,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에서 살아남은 여섯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썼고, 이 이야기는 1946년에 처음 책으로 나옵니다.
존 허시 님은 그 뒤 마흔 해가 지나서 “40년 후” 이야기를 보탭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고 난 뒤에 살아남은 여섯 사람이 지난 마흔 해 동안 어떤 살림을 꾸렸는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책 하나로 새로 묶였어요. 《1945년 히로시마》(책과함께,2015)는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폭격기들이 지나가자마자 나카무라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2시 3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곧장 라디오부터 켰다. 그런데 다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게 아닌가.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아이들을 쳐다봤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동부 연병장까지 도대체 얼마나 왔다갔다했던가. (24쪽)
그는 양말만 신은 채로 여기저기 끌려다녔고, 밀려드는 환자에 아연실색했으며, 끔찍할 정도로 드러난 생살에 자지러졌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의 직업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능숙한 외과의사로서,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진료할 수가 없었다. 대신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닦고 바르고 감고, 닦고 바르고 감기만을 반복했다. (54쪽)
《1945년 히로시마》라는 책은 ‘일본 원폭 생존자’ 여섯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이 생존자 여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서양 신부입니다. 일본에 서양 종교를 퍼뜨리려고 들어온 사람이지요. 이 한 사람을 뺀 다섯 사람은 일본사람이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입니다. 《1945년 히로시마》는 전쟁 불구덩이에서 ‘민간인’은 어떻게 전쟁을 맞닥뜨려야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은 어떤 살림이고 삶이었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적에 틀림없이 일본사람이 가장 많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도 무척 많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해야 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원자폭탄이 터진 뒤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식민지 강제징용 노동자’는 고향나라로 돌아온 뒤에 모질게 앓습니다. ‘원폭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지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고, 나중에 원폭병인 줄 알아도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모두 등을 돌렸기에 그대로 죽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뿐 아니라 ‘일본인 원폭 피해자’도 오랫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전쟁 미치광이’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전쟁터에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으며 ‘천황 폐하한테 충성’하겠노라 다짐한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전쟁이란 까맣게 모르면서 조용히 살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원자폭탄은 이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였고, 전쟁을 일으킨 정치권력은 ‘죽은 사람’하고 ‘살아남은 사람’ 앞에 고개 숙여 뉘우치는 몸짓이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사사키 양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 한 명 없이 공장 앞마당에 대충 임시방편으로 만든 지붕 아닌 지붕 아래 버려졌다 … 부러진 다리 때문에 무시무시한 고통에 시달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90쪽)
사사키 양은 두 동생을 그 고아원에 맡겼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도 그 고아원의 보모 자리를 지원했다. 그녀는 그곳에 채용되었고, 그 후 야스오와 야에코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을 삶의 위안으로 삼았다. (204쪽)
불구덩이에서 죽어야 했던 이들은 ‘민간인’입니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는 전쟁터가 아니라 ‘민간인 마을’이었으니까요. 군수공장이 이런 도시에 있었다 하더라도,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민간인’이지요. 또 한국·중국·대만에서 끌려온 ‘강제징용 노동자’이고요.
더 헤아리면, 전쟁터에 나가서 총을 들어야 하는 이들도 ‘민간인’입니다. 몇몇 간부나 장교쯤이라면 직업군인일 테지만,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서 죽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민간인입니다. 더군다나 직업군인 사내를 낳은 어버이도 거의 모두 민간인이요, 군대에서 간부나 장교인 사람들 식구까지도 모두 민간인이라고 할 만해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전쟁을 일으키는 정치권력)’가 이들 민간인을 군대로 끌고 갑니다. 그동안 평화롭게 살던 민간인은 정치권력이 등을 미는 대로 총을 손에 쥐고서 ‘다른 민간인(이웃나라 사람)’을 죽이는 몫을 맡습니다. 다른 민간인도 군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이 총을 겨누는 적군(우리한테 쳐들어온 이웃나라 군인)이란 똑같이 ‘민간인’일 수밖에 없어요.
정치권력은 권좌에 앉아서 민간인을 이리저리 휘두릅니다. 민간인인 여느 사람들은 난데없이 총을 손에 쥐고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서로 죽으니,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끔찍한 불구덩이가 됩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도 불구덩이요,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은 수많은 전쟁터도 똑같이 불구덩이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겪은 사람들을 지칭할 때, 일본인들은 ‘생존자’라는 단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살아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이 단어는 숭고한 죽음을 맞은 자들을 다소 경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카무라 부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할 때 ‘피폭자’라는 다소 중립적인 단어가 사용되었다 … 일본 정부는, 승전국인 미국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 등을 비롯하여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160쪽)
존 허시 님이 쓴 《1945년 히로시마》에 나오는 여섯 사람 가운데 이 ‘끔찍하고 모진 전쟁 불구덩이’를 제대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딱 하나입니다. 원자폭탄이 처음 떨어지던 때에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쳐서 걷지 못한 채 비를 쫄딱 맞으면서 며칠 동안 굶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사키’라는 여학생입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그무렵에는 여학생이었으나, 이 불구덩이에서 다리를 다쳐서 절름발이가 된 뒤에는 어버이를 잃은 외톨이로 바뀝니다. 어린 두 동생을 절름발이인 몸으로 돌봐야 하는 외톨이예요.
나는 《1945년 히로시마》를 읽으면서 다른 다섯 사람보다 이 한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다른 다섯 사람 이야기도 안쓰럽다고 할 만하지만, 다른 다섯 사람은 ‘안쓰러운 아픔’을 겪고 난 뒤에 ‘전쟁하고 등을 지거나 전쟁을 깡그리 잊은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오직 사사키라는 여학생은 ‘전쟁을 늘 껴안으면서 이 전쟁이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깊이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여학생 사사키는 외톨이가 되었다가, 두 동생을 고아원에 맡긴 뒤, 이녁 스스로도 고아원으로 들어가서 돌봄이(보모) 일을 합니다. 오랫동안 돌봄이 일을 하다가 동생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수녀원에 조용히 들어갑니다. 수녀가 된 뒤에는 요양원 일을 하면서 한삶을 보내는데, 이녁은 늘 ‘아프고 외로운 이’ 곁에서 벗님 자리를 지켜요.
사사키 양은 아기 엄마들이 불쌍했다. 아기 엄마 중에는 매춘부도 있었다. 또 아기 아빠도 불쌍했다. 아기 아빠들은 열아홉 혹은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미국) 청년들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과 무관해 보이는 전쟁에 징집되어 온 처지였고, 아기 아빠로서의 책임감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 즉 죄책감 정도에 불과했다 … 경미하게 부상을 당한 피폭자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들이 주로 원자폭탄을 들먹였다.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전쟁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인데 말이다. 전쟁은 원자폭탄과 소이탄 투하로 일본인들을 희생시켰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중국의 민간인들을 희생시켰으며,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전쟁에 마지못해 끌려나온 어린 일본인 병사와 미국인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또 일본인 매춘부와 그들이 낳은 혼혈아들도 희생시켰다. (206∼207쪽)
전쟁무기가 있으니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무기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벌이려고 마련하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력을 손에 쥔 이들은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려 합니다. 전쟁무기는 나날이 최첨단을 걷습니다. 최첨단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들어갈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는 언뜻 ‘평화 지키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갖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는 뜻으로 만듭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전쟁무기는 없습니다. ‘방어하는 전쟁무기’란 없다는 뜻이에요. 모든 전쟁무기는 ‘공격해서 죽이려’고 만들어요.
더욱이 《1945년 히로시마》를 읽으면, ‘불쌍한 아기 엄마’와 ‘불쌍한 아기’와 ‘불쌍한 아기 아빠’를 바라보는 사사키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녁이 고아원에서 일하는 동안 마주하는 ‘세 가지 불쌍한 사람’은 모두 전쟁 때문에 나타납니다. 전쟁 때문에 한쪽에서는 가시내가 ‘성 노리개’가 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내가 ‘전쟁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면서 성욕 풀이’를 하는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됩니다.
전쟁은 얼마나 미친 짓일까요. 전쟁무기는 얼마나 끔찍한 것일까요. 전쟁무기 가운데 원자폭탄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까요.
히로시마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고 합니다. 히로시마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뒤 군수공장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잿더미 도시가 되는데, 잿더미를 치워서 새롭게 일으켜세울 적에 유흥도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쟁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니 이 문명 사회가 걷는 길은 ‘유흥도시’인가 싶어 아찔합니다.
원폭 투하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히로시마는 일본 전역에서 가장 현란한 유흥도시로 탈바꿈했다. (218쪽)
《1945년 히로시마》 첫머리를 보면 하승수 님이 추천글을 씁니다. 이 추천글에서 김형률이라는 분 이야기를 밝혀요. ‘원폭 피해’를 받은 사람이 낳은 아이는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습니다.
1946년에 처음 선보인 책을 1986년에 보탤 적에 존 허시 님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알 수 있었을까요, 알기 어려웠을까요? 아마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1980년대 첫무렵에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미국사람이 찾아내어 만나기란 몹시 어려웠을 테고, 이를 다룬 자료도 찾기가 매우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도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돌아보고 살피며 도우려고 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아니고, ‘한국 민간인’이 원폭피해자를 이웃으로 바라보았어요. 1975년에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창원사)라는 책이 처음으로 나왔고, 이 책을 쓴 박수복 님은 열 해 뒤에 《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한국인 원폭피해자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핍니다. 이밖에 《한국인 원폭피해자(실태조사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1984년에 나왔어요.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사회사진연구소는 1989년에 《그날 이후》(한국교회여성연합회)라는 사진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픈 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쟁 불구덩이도, 원자폭탄 불구덩이도 이 지구별에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2.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