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잭 창작비화 2 - 테즈카 오사무의 작업실에서
요시모토 코지 지음, 미야자키 마사루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04



‘만화 하느님’ 곁에 있는 수많은 ‘하느님’

― 블랙잭 창작 비화 2

 미야자키 마사루 글

 요시모토 코지 그림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4.25. 1만 원



  만화를 그린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얻은 테즈카 오사무 님 이야기를 그린 《블랙잭 창작 비화》(학산문화사,2014) 둘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숨을 거둔 지 스무 해 남짓 지났는데, 일본에서는 아직도 이녁을 기리거나 그리는 사람이 참으로 많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동료와 후배가 그리운 목소리로 되새기면서 빚은 《블랙잭 창작 비화》는 얼마나 따끈따끈한 사랑이 깃들며 태어났는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여러분, 일에 목숨을 걸어 주세요!” ‘네?’ ‘목숨이요?’ (6쪽)


“롯폰기의 콘소메 수프가 먹고 싶어!” “지금 당장 만화에 대해 잘 아는 중국어 통역을 찾아 줘요!” “멜론!” “카이메이 잉크를 사 와요!” “안경이 없어요!” “햄 없나요?” “케이크가 없으면 못 그려!” “의치가 또 없어!” “슬리퍼가 없으면 그릴 수 없어요!” “초콜릿!!” (19∼20쪽)



  《블랙잭 창작 비화》 둘째 권을 보면, 첫머리부터 좀 그악스럽다 싶은 한 마디로 엽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도움이(어시스턴트)들한테 ‘그림(만화)’을 그릴 적에 목숨을 걸어 달라고 외칩니다. 도움이들은 가뜩이나 밤잠을 미루며 그림을 그리는데 그 말을 듣고 놀랄 뿐입니다. 잠도 못 자는데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이녁 목숨을 걸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도움이는 며칠쯤 잠을 미루면서 그리고, 또 바탕그림을 그릴 원고가 넘어오기까지 살짝 쉴 겨를이 있지만, 테즈카 오사무 님은 쉴 겨를이 없습니다. 방송에서 만화영화가 나오거나 극장판 만화영화를 다 마무리짓고 다른 이들은 모두 쉬거나 뒤풀이를 가더라도 테즈카 오사무 님은 늘 ‘다음 만화’를 그리고 밑틀(콘티)을 짜야 했어요.


  《블랙잭 창작 비화》 둘째 권에는 ‘목숨을 걸며 만화를 그리다’가 그만 머리가 펑 하고 터지면서 갑작스레 트집이나 핑곗거리를 찾는 테즈카 오사무 님 모습이 잔뜩 나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이녁 자서전에는 안 나왔지 싶은데, 한겨울 한밤에 수박을 먹고 싶다고 외친다든지, 그림을 잘못 그려서 종이를 덧대야 하기에 본드를 사오라고 시킨다든지, 가까운 편의점 말고 멀리 있는 편의점에서 파는 컵라면을 사 달라든지, 초콜릿이나 케익을 노래한다든지, …… 어느 모로 보면 짓궂은 장난인데, 어느 모로 보면 이 ‘장난을 맞추어’ 주는 동안에는 펜을 손에서 놓으면서 쉴 겨를이 납니다. 이레나 열흘씩 만화가 곁에서 원고 마무리를 지켜보면서 기다리던 출판사 편집자도 이런 심부름을 하면서 한숨을 돌리거나 바람을 쐬기도 하고요.



테즈카 선생님은 작품에 관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수고, 아이디어, 인재, 조직, 그리고 돈, 모든 것을 쏟아붓는 거예요! (35쪽)


계속 무리하면서 만화를 그리던, 테즈카 선생님의 안경이니, 이렇게 폭삭 삭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테즈카 선생님은 자신의 몸에, 가장 억지를 부리셨던 게 아닐까요? (44∼45쪽)



  1928년에 태어나 1989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예순을 갓 넘기고서 저승사람이 된 테즈카 오사무 님입니다. 그렇지만 숨을 거두는 날까지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고 다음 작품을 떠올렸다고 해요. 다시 말하자면, 그무렵 테즈카 오사무 님 곁에서 도움이로 일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옛날 옛적을 돌아보노라면 ‘스스로 가장 억지를 부리며 만화를 그린’ 테즈카 오사무 님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은 잠을 자도록 해도 테즈카 오사무 님은 잠을 거의 안 자면서 만화를 그렸으니까요.



저희가 잠든 사이에도 테즈카 선생님은 주무시지 않고 계속 그리고 계셨어요. 돌이켜 보면, 도우러 간 닷새 간, 결국 한 번도 테즈카 선생님이 주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171쪽)


그 다음 날이 졸업식이었는데, 아버지가 ‘테즈카 오사무를 만날 일은 흔치 않으니 다녀와!’라는 거야. 졸업식도 흔치 않은데 말이야. 아하핫! (186쪽)



  밤잠을 달게 자면서 만화를 그렸다면,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일흔이나 여든이나 아흔까지 살았을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자꾸자꾸 새롭게 그리고 싶은 만화가 떠오르기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다고도 할 만해요. 한꺼번에 열 가지가 넘는 만화를 이어서 그리는 동안에도 이 작품들에 이어 새로운 작품을 떠올리지요. 마감이 닥치면 열 가지가 넘는 원고를 모두 책상에 올려놓고서 한꺼번에 한 쪽씩 재빠르게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쿄를 떠나서 다른 고장으로 가서 마감에 쫓기며 만화를 그릴 적에 그 고장에서 만화가를 꿈꾸는 고등학생을 불러서 도움이 노릇을 해 달라고 할 적에, 고등학생들 어버이는 ‘졸업식보다 테즈카 오사무를 만나러 가라’고 말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졸업식에 가지 못하더라도 며칠 동안 밤샘을 하면서 도움이 노릇을 하라고 아이들 어버이가 등을 떠민다고 할까요.


  이런 뒷이야기를 읽으며 곰곰이 돌아봅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대접을 받을 만한 만화가가 있었을까요? 앞으로 한국에서 이만 한 대접을 받을 만한 만화가가 나올 수 있을까요? 졸업식도 입학식도 대수롭지 않으니 ‘그분’을 만나러 가라고 아이 등을 떠밀 어버이는 몇이나 있을까요?



특이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지. 아니, 우연히 모인 게 아니고, 모은 거야. 난 테즈카 선생님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젊은이들에게, 있을 곳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 (59쪽)


“당신이면 됩니다. 그런 당신이니 좋은 거예요! 제가 할 수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80쪽)



  만화 하나가 태어나려면 만화가 혼자서는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 만화가 한 사람 곁에 수없이 많은 도움이가 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처럼 한 주에 열 가지가 넘는 연재만화를 그린 만화가한테는 도움이가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으로도 모자랍니다. 게다가 잡지 연재 만화뿐 아니라 만화영화까지 함께 그렸기 때문에, 한창 일꾼을 많이 둘 적에는 이백 사람이 넘게 도움이 구실을 했다고 해요. 한 사람 머릿속에서 태어나는 만화 이야기를 받치려고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라붙어서 땀을 흘린 셈입니다.


  그래서, ‘만화 하느님’ 곁에는 수많은 ‘도움이 하느님’이 있었다고 해야지 싶습니다. 수많은 ‘도움이 하느님’이 흘리는 땀방울로 ‘만화 하느님’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해야지 싶어요.


  테즈카 오사무 님은 언제나 “제가 할 수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도움이를 북돋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테즈카 오사무 당신이니까 하지요’ 하는 생각이 으레 떠오른다고 하지만, 참으로 온몸에서 새롭게 기운이 솟는다고 해요. 참말 우리는 저마다 다른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지치지 않고 만화를 그리니, 아니 새롭게 일어서면서 만화를 그리니, 이 만화가 곁에 수많은 사람이 즐겁게 찾아옵니다. 지치지 않고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다 함께 밤잠을 미룹니다. 그러고 나서 다 함께 활짝 웃으면서 ‘다 함께 흘린 땀방울로 태어난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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