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93] 얼렁뚱땅



  물을 흘리거나 밀가루를 쏟았는데 내가 하지 않은 척하면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한 적이 있나요? 그릇이나 접시를 깨뜨리고는 부리나케 치워 놓고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살그마니 넘어가려고 한 적이 있나요? 스리슬쩍 넘어가거나 슬며시 넘어가거나 슬쩍슬쩍 넘어가거나 사알짝 넘어가려고 하는 몸짓을 가리켜 ‘얼렁뚱땅’이라고 해요. ‘얼렁뚱땅’은 센말이고, ‘알랑똥땅’은 여린말이에요. 한국말은 느낌이나 소리나 시늉을 가리키는 말마디마다 센말하고 여린말이 있어요. 느낌이 세기에 센말이고, 느낌이 여리기에 여린말이에요. 그래서 ‘살짝·슬쩍’처럼 느낌이 다르고, ‘살며시·슬며시’처럼 느낌이 달라요. ‘살짝’하고 ‘살작’도 느낌이 다르지요. ‘스리슬쩍’이나 ‘사리살짝’도 느낌이 다릅니다. 어떤 일을 남이 모르게 이냥저냥 넘어가려 할 적에 ‘얼렁얼렁’이라든지 ‘알랑알랑’ 넘어가려 한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어설피 넘어가거나 엉성하게 넘어가려고 하는 셈인데,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처음부터 깨끗하게 털어놓고 지나가야 나중에 깔끔하기 마련이에요. 내가 모르는 척한다고 해도 남들은 다 알거든요. 누구보다 나 스스로 가장 잘 알 테고요.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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