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부침



  내가 달걀을 부치면 우리 집에서는 ‘달걀부침’을 먹습니다. 내가 계란을 후라이로 하면 우리 집에서는 ‘계란후라이’를 먹습니다. 내가 달걀을 지글지글 익히면서 살살 말면 우리 집에서는 ‘달걀말이’를 먹지요. 내가 계란을 자글자글 익히면서 찬찬히 말면 이때에 우리 집에서는 ‘계란말이’를 먹어요. 어떤 낱말을 골라서 쓰느냐에 따라 삶이나 살림이 가만히 바뀌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어릴 적부터 달걀부침이나 달걀말이를 먹고 자란 어린이는 ‘계란후라이’나 ‘계란말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리송할 수 있어요. 거꾸로 어릴 적부터 계란후라이나 계란말이만 먹고 자란 어린이라면 ‘달걀부침’이나 ‘달걀말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쏭달쏭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한국에서는 기름이 지지거나 부쳐서 먹을거리를 장만했어요. 지글지글 지지면 ‘지짐’이나 ‘지짐이’입니다. 자글자글 부치면 ‘부침개’나 ‘부침’이에요. 굴비지짐이나 쑥부침개를 먹고, 떡지짐이나 부추부침을 먹지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서로 빙그레 둘러앉아서 지짐이 하나에 이야기 한 타래를 풀어놓습니다. 부침개 하나에 이야기 한 자루를 털어놓습니다. 434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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