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 대소동 자연그림책 보물창고 7
조너선 에메트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8



떨어진 가랑잎은 새 잎으로 태어난다

― 가랑잎 대소동

 조너선 에메트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11.10.10. 11000원



  나무에서 떨어진 잎은 다시 나무에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뭇잎을 보면서 안타까이 여긴 나머지, 이 나뭇잎을 도로 나무한테 주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나뭇잎더러 떨어지지 말라고 말하기도 해서, 내 어릴 적을 문득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직 멋모르니까, 아직 철이 들지 않았으니까, 아직 삶을 제대로 모르니까, 이렇게 나뭇잎을 안타까이 바라보거나 안쓰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나도 아직 숲 얼거리를 제대로 모르던 철부지일 적에는 나뭇잎을 도로 나무한테 어떻게 붙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잎이 지는 나무를 안타까이 여기는 아이들한테 ‘이 나뭇잎은 떨어져도 돼. 나무는 이 나뭇잎을 떨구려고 하니까 떨어져. 그리고 이 나뭇잎은 바싹 말라서 천천히 흙으로 돌아가지. 흙으로 돌아간 나뭇잎은 다시 나무한테 스며들어서 새로운 줄기도 되고 가지도 되고 꽃도 될 뿐 아니라 잎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그럼, 나뭇잎을 다시 나무에 안 붙여도 되겠네?’ 하고 물어요. 이러면서 활짝 웃습니다.




숲 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키 큰 풀들을 살살 간질이고 나무들을 산들산들 흔들었어요.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 거예요. (2쪽)



  조너선 에메트 님이 글을 쓰고, 캐롤라인 제인 처치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가랑잎 대소동》(보물창고,2011)을 읽으면서 몇 해 앞서 아이들하고 주고받은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나뭇잎이 떨어질 적에 나무 밑에 서서 ‘와아!’ 하면서 소리지르며 놉니다. 나뭇잎 비가 온다고, ‘잎비’가 온다고 재미있어 합니다. 바람이 불면서 가랑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또 이때대로 잎비 놀이를 합니다. 그림책 《가랑잎 대소동》은 바로 ‘잎이 지는 가을’을 처음으로 보는 새끼 숲짐승한테 어미 숲짐승이 가을이며 겨울이며 눈이며 가랑잎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푸르는 잠시 그대로 누워서 잎들을 쳐다보았어요. ‘색깔이 바뀌었어!’ 쭈르는 놀라서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어요. (8쪽)



  나무 한 그루는 새롭게 자라려는 뜻으로 잎을 떨굽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더욱 우람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면서 노래를 부르려는 뜻으로 잎을 내놓습니다. 늘푸른나무라면 잎이 지지 않고 몇 해 동안 이어가기도 하지만, 늘푸른나무도 오랜 잎이 말라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잎갈이를 해요.


  가만히 보면 풀도 해마다 가을에 누렇게 시들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봄에 돋는 풀은 여름이면 더위에 타서 말라죽은 뒤 흙으로 돌아가지요. 따뜻한 볕은 풀이 새로 돋도록 북돋울 뿐 아니라, 잘 자란 풀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이끌어요. 이리하여 지구별 흙은 ‘나고 지는’ 풀잎이 깃들어 언제나 기름진 숨결이 됩니다. 나무는 해마다 잎갈이를 하면서 이 잎으로 나무 둘레 흙이 늘 기름지도록 북돋아요.




쪼르는 가랑잎들을 나무 위로 옮기고, 쭈르는 가랑잎들을 가지에 다시 붙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일이 뜻대로 잘 되질 않았어요. (15쪽)



  잎이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무한테서 잎이 하나도 안 지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잎이 안 지는 나무’는 ‘자랄 수 없는 나무’가 될는지 모릅니다. 나무는 잎이 지기 때문에 한결 새롭게 자라는구나 싶습니다.


  꽃을 보면 잘 알 만해요. 꽃이 져야 비로소 씨앗이 여물고 열매를 맺습니다. 꽃만 대롱대롱 달린 채 있으면 씨앗이 새로 자라지 못하면서 나무나 풀은 더 퍼지지 못하겠지요. 지는 꽃은 씨앗하고 열매로 나아가는 길이요, 지는 잎은 나무와 풀이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는 흐름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가랑잎을 바라보며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논 뒤에 저녁부터 밤을 지나 아침까지 느긋하게 자요. 어른도 잠을 자고요. 낮에는 일하거나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모두 고요하게 잠들면서 새로운 꿈을 가슴 가득 품습니다.




“가랑잎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쭈르가 말했어요. “그리고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쭈르는 두 손 가득 가랑잎들을 집어 들고 엄마와 쪼르한테 얘기했어요. “이것 좀 보세요. 가랑잎들 빛깔이 저녁노을 빛깔하고 똑같잖아요.” (24쪽)



  그림책 《가랑잎 대소동》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가랑잎이 나뭇가지에서 톡 떨어져서 바람을 타고 땅바닥에 툭 소리를 내는 일을 ‘북새통(대소동)’으로 여길 만한지, 아니면 아무것이 아니라고 여길 만한지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가 ‘어릴 적을 잊은 어른’ 눈높이로 바라본다면 가랑잎은 그야말로 안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올챙이 적을 잊지 않는 어른’ 눈높이로 바라본다면 해마다 제철을 맞이해서 곱게 물들어 잎갈이를 하는 나무를 바라보는 삶이란 언제나 대단하면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지 싶습니다.


  떨어진 가랑잎은 새 잎으로 태어납니다. 밤에 깊이 잠들면서 아침에 새로운 몸으로 깨어납니다. 나무는 잎을 떨구면서 씩씩하고 더욱 튼튼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개구지게 뛰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할 테지만, 언제나 더욱 야무지게 일어나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어느덧 가을이 다 가고 겨울로 접어든 십이월에 그림책 한 권을 곁에 두면서 삶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4348.1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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