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배우러 다녀오는 길
엿새에 걸쳐 미국으로 배우러 다녀오는 길이 있는데 아직 비행기표를 못 끊는다. 엿새 동안 배움길을 다녀오려면 비행기삯하고 배움삯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엿새 동안 지내면서 머무는 길삯이나 밥삯이 들고, 열흘 즈음 세 식구가 고흥집에서 지낼 살림돈이 든다. 이만 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배움길을 다녀오던 나날을 돌아보면, 곁님이 배움길을 다녀올 적에 ‘주머니에 돈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비행기삯하고 배움삯을 카드로 긁어서 보낸 뒤, 어떻게든 이 배움삯을 갚으려 했고, 여태 이러한 돈을 찬찬히 갚으면서 지냈다.
나는 내 배움길에서 무엇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가?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 돈이 없기에? 세 식구가 열흘 즈음 지낼 살림돈이 없다고 여겨서? 세 식구가 잘 지낼는지 못 지낼는지 걱정이 되어서?
그러나, 이보다는 비행기를 탈 적부터 내릴 적하고 움직일 적에 늘 영어를 써야 하고, 영어로 강의를 들어야 하며,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배움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영어로 하는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느냐고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든지, 한겨울에 한국보다 추운 고장에서 잘 지낼 만한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삶을 사랑스레 살리고 가꾸는 마음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배움길이라는 대목을 생각하면 이 배움길을 씩씩하게 나서고 싶다. 돈이야 어떻게든 벌어서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세 식구가 이 겨울에 도란도란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부터 스스로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음과 몸짓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4348.12.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