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에 핀 산국



  가을 논둑에 산국이 핀다. 드문드문 살금살금 고개를 내민다. 이 아이들은 가실을 마치고 나서 꽤 지난 늦가을에 피기 때문에 기계낫에 썰릴 일도 없고, 풀약에 꼬르륵 타죽을 일도 없다. 가을일을 모두 마친 논둑에서 피어나는 꽃은 그야말로 오늘날 시골살이를 잘 읽거나 헤아린 아이들이라고 할 만하다.


  산국이든 들국이든 무엇이든, 봄이나 여름에 논둑에 피면 곧 낫날에 스러진다. 그렇지만 다시 한 가지를 헤아려 본다. 풀베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시골에 아이들이 많고 젊은 사람도 많다면 섣불리 이 들꽃을 베거나 뽑지는 않으리라고. 아이들이 꽃을 보고 놀 수 있도록 꽃을 잘 살릴 테고, 젊은 사람도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일손을 쉴 만하다.


  바쁘게 몰아쳐야 하는 일손이 아니다. 일손을 놀리다가도 가만히 쉬면서 꽃내음을 맡을 노릇이다. 이런 들꽃도 피고 저런 풀꽃도 자라면서 싱그러운 숲내음을 맡을 시골노래이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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