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83. 종이가 모자란 그림



  그림은 종이에도 그립니다. 그림은 종이에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이 맨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그림은 따로 종이가 아닌 모든 곳에 그렸습니다. 하늘에 대고 그림을 그렸고, 냇물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흙바닥이나 모랫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어요. 사람이 지구별에서 살아온 발자국을 거슬러 올라가면 ‘종이를 빚어서 쓴 햇수’는 몹시 짧습니다. 아스라한 옛날에는 바위나 동굴에도 그림을 그렸지요. 오늘날까지 남은 오래된 그림은 적지만, 사람들 가슴속에 아로새긴 그림은 무척 많아요. 사진은 필름이나 디지털파일로 찍는다지만, 먼저 가슴속에 찍어야 사진이 태어납니다. 그림순이가 ‘종이가 모자라’다며 책상에까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먼저 가슴속에, 이런 뒤에 사진기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4348.11.1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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