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랑 광주, 100만 원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우리 도서관하고 우리 보금자리를 방송으로 찍고 싶다면서 요 달포 사이에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찍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다가 모두 그만두고 말았는데,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는 그 방송을 찍으면 우리한테 출연료를 100만 원 준다고 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면서도 출연료를 그만큼 받는다면 꽤 여러 날 힘들게 찍혀야 할 일이로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이런 ‘방송 찍히기’를 어제와 그제 이틀에 걸쳐서 했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이 아닌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 일꾼들하고 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에서는 출연료를 따로 안 줄 듯하다. 그러니까 똑같은 ‘방송 찍히기’이지만, 출연료 없이 힘들게 이틀을 바치면서 어느 모로 보면 자원봉사를 한 셈이다. 내가 자원봉사를 좋아한 삶이었기에 방송에 찍힐 적에도 자원봉사를 했을까. 아무래도 그러하구나 싶은데, 아이들을 토닥토닥 재우고 나도 꼬르륵 곯아떨어지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혼자 재미있어서 잠자리에서 하하하 웃었다.


  광주에서 찾아온 방송국 일꾼은 그저 스스럼없이 우리 도서관에 찾아와 주었고, 그저 수수하게 방송을 찍겠노라 했다. 서울에서 전화를 건 방송국 일꾼은 그저 전화로 몇 시간씩 이것을 묻고 저것을 묻기만 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자꾸 전화만 걸면서 꼬치꼬치 물을 적에 힘들고 괴로웠다. 전화할 틈이 있으면, 그렇게 자꾸 전화해서 한두 시간을 넘길 만하다면 좀 한 번 ‘서울에서 시골로’ 와서 얼굴을 마주보면서 물어볼 마음은 없는지?


  백 해쯤 묵은 책을 내가 사진으로 찍어서 누리사랑방에 올린 모습을 볼 적하고, 이 백 해쯤 묵은 책을 그냥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두 눈으로 몸소 보고 손으로도 만져 볼 적에는 사뭇 다르다. 값이 몇 천만 원에 이른다는 김소월 님 시집은 우리 도서관에 없다. 그러나, 돈으로 따져서 그리 비싼 책은 우리 도서관에 없으나, 삶을 재미있게 되읽고 다시 살피도록 북돋우는 아기자기한 책은 우리 도서관에 많다.


  100만 원이란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돌아본다. 아직 우리 집은 살림이 퍽 가난해서 돈 1만 원을 쓸 적에도 벌벌 떨고, 내 ‘목숨이 다한’ 사진기도 새로 장만하지 못하면서 골골거린다. 겨울을 앞두고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아직 보일러 기름을 장만할 돈을 못 모았다. 그런데 나는 왜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우리 도서관하고 보금자리를 찍겠다고 하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나는 왜 똑같은 ‘방송 찍기’인데, 전라도 광주에 있는 방송국 사람들이 찾아왔을 적에는 스스럼없이 찍어 주었을까?


  이래저래 생각해 보는데 스멀스멀 웃음이 난다. 나는 이런 살림으로도 제법 살 만한가 보다. 아니, 돈을 벌거나 받더라도 스스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일거리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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