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틀에 걸쳐서 ‘방송 찍기’를 했다. 이틀에 걸쳐서 하는 방송 찍기는 기운을 몹시 짜내야 했다. 나는 나대로 했지만, 아이들이 몹시 애써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면서 찍히도록 하하하 깔깔깔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이 일을 했다. ‘방송에 찍히는 모습’으로 꾸민 내 삶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아이들하고 노는 삶을 지으려고 씩씩하게 웃고 노래했다.
엊저녁에 방송 찍기를 마친 뒤 그야말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밥을 차려야 하기는 한데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밥을 새로 짓지도 못했다. 그나마 동글배추를 썰려고 하는데 손이며 팔이며 덜덜 떨려서 ‘안 되겠어. 도무지 칼질조차 못 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괜찮아. 이만큼은 할 수 있어. 하면 돼.’ 하고 나한테 자꾸 말을 걸었다. 동글배추를 조금 써는 동안에도 온힘을 쏟아서 가까스로 손가락을 안 베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다시 조용한 내 삶으로 돌아간다. 다시 아이들하고 호젓하게 노는 내 삶으로 돌아간다. 모두 아름다운 이웃이요 벗님이라는 생각을 다시 마음에 품는다. 자, 나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마당을 쓸고, 다시 밥을 짓고, 다시 노래를 불러야지.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