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길 저 손길
이 손길이 닿아 이 책 한 권이 새롭게 빛난다. 저 손길이 닿아 이 책이 새삼스레 빛난다. 한 사람 손길이 닿으면서 비로소 곱게 피어난다. 두
사람 손길이랑 세 사람 손길이 어우러지면서 바야흐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뿌리를 내린다.
책 한 권은 꼭 한 사람한테 읽히려고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꼭 한 사람은 오래도록 책 한 권을 건사한 뒤 새로운 한 사람한테 물려줄 수
있고, 새로운 한 사람도 오래도록 책 한 권을 건사한 뒤 다시 새로운 한 사람한테 물려줄 수 있다.
책이란, 참으로 책이란, 한 번 읽히고 사라져도 되기에 나오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책이란, 그러니까 책이란, 한 번 읽히고 두 번 세 번 거듭
읽히면서 두고두고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려는 숨결로 태어난다고 느낀다.
새책방에서 한 번 팔리고 끝이 날 책이 아니라, 여러 사람 손길을 차근차근 걸치면서 여러 사람한테 기쁜 숨결을 나누어 주려고 태어나는 책이라고
본다. 내 손에서 네 손으로 가고, 네 손에서 내 손으로 온다. 우리는 서로서로 책을 돌려서 읽고 돌보고 건사하고 어루만지면서 마음밭을 가꾼다.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책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