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걸상
책 한 권을 손에 쥐어 한 쪽 두 쪽 천천히 읽다가 어느새 이야기에 사로잡히면 오직 이야기만 바라본다. 두툼하다 싶은 책을 들고 책을 읽더라도 팔이 아프다거나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을 잊는다.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못할 적에는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기 마련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아무리 무게가 나가더라도 이 책 때문에 무겁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이 안 다치도록 잘 건사하자는 생각을 한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아무리 값이 나가더라도 이 책 때문에 주머니가 홀쭉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을 기쁘게 장만하자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어떤 장난감이든 ‘장난감에 붙은 값’ 때문에 더 아끼거나 덜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일 때에 그야말로 아끼고 보듬고 사랑하고 고이 품으면서 신나게 논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난감으로 신나게 노는 아이란 없다. 그러니, 책을 읽는 어른이 바라볼 곳은 ‘내 앞에 있는 책에 내 마음이 살며시 날아가듯이 닿는가’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걸상이 있다면 발걸음 소리를 죽이면서 조용히 앉는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적에는 종잇장 넘기는 소리조차 없다.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더위나 추위도 느끼지 않는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온마음을 넉넉히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로 흐른다. 4348.11.8.ㅎ.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