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들빼기꽃
가을에 가을 고들빼기꽃을 본다. 고들빼기꽃은 가을에 핀다. 꽃이 필 무렵 더는 잎을 훑을 만하지 않아서 내 마음에서 살며시 떠나고 마는 고들빼기이다. 어찌 보면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봄부터 가을 어귀까지 잎사귀를 신나게 베풀어 준 고들빼기인데, 꽃이 필 때부터 ‘꽃 구경’조차 안 하고 지나쳐 버리니까.
나로서는 ‘뜯어서 먹는 풀’한테 눈길이 더 가니까, 아무래도 꽃이 피는 풀한테는 눈길이 덜 갈는지 모른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국화라든지 코스모스 같은 꽃에 깊이 눈길을 두지, 이 작고 멋진 고들빼기꽃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기 일쑤이다. 어쩌면 고들빼기꽃인지 아닌지도 모를 테고, 고들빼기를 뿌리까지 캐서 김치로 담가서 먹는 ‘반찬 모습’만 보았을 뿐, 고들빼기잎을 먹은 적도 없어서 고들빼기라는 풀에 꽃이 피는 줄 모르기도 하리라.
가을로 접어들어 고들빼기풀에 꽃대가 오르면 잎사귀가 줄어드는데, 이때에 잎사귀를 또 바지런히 뜯으면 고들빼기풀이 나한테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동안 많이 뜯어먹었잖아. 이제 그만 좀 뜯어. 나도 꽃을 피워서 씨앗을 퍼뜨려야지. 이듬해에는 안 먹을 생각이니?’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