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 인지과학이 발견한 배움의 심리학 하워드 가드너의 마음의 과학 1
하워드 가드너 지음, 류숙희 옮김 / 사회평론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213



오늘날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하워드 가드너 글

 류숙희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15.9.3. 2만 원



  배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늘 배웁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만 배우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가 널리 퍼져서, 꼭 학교에 다녀야만 배울 수 있는 줄 여기지만, 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학교가 아닌 집에서 먼저 배웠고, 마을에서 배움을 넓혔고, 들과 숲과 바다에서 배움길을 한껏 펼쳤습니다.


  여느 때에 집에서 즐겁게 삶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학교에 가서도 즐겁게 지식이나 정보를 배웁니다. 여느 때에 마을에서 기쁘게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나중에 먼 고장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꿈을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여느 때에 들과 숲과 바다에서 온누리를 배울 줄 아는 사람일 때에, 이 지구별을 넉넉히 품에 안으면서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배웁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 열렬하고 지속적으로 이해를 개선하려는 사람을 간절히 바란다. (22쪽)


300년 전 학교에서는 엘리트만을 가르쳤고, 주로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그 다음 200년에 걸쳐서는 좀더 큰 집단을 가르쳤고, 주로 세속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렇게 변화한 이유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믿을 만한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뚜렷한 교육 계획과 권한을 가진 중앙집권적 교육담당 부서가 나타났다. (61쪽)



  하워드 가드너 님이 쓴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사회평론,2015)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 학교교육’은 사람한테 무엇을 가르칠 만한가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울 만한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다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학교와 삶과 사람 사이에 맺는 실타래를 푸는 책인데, 한국 사회는 으레 미국 사회를 좇거나 따르기 마련이니, 한국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흐름인가를 읽는 데에도 길동무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어떤 구실을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 구성원을 이룰 아이들이 사회에 잘 길들도록(적응하도록)’ 교과서를 엮습니다. 사회를 고치거나 바로잡거나 갈고닦거나 새로 지을 만한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에서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사회 구성원’이 될 만한 교육을 시키려는 중앙정부예요. 요즈음 한국 중앙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겠다고 난데없이 나서듯이, 한국 중앙정부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어서, 정부가 바라는 대로 사람들이 끌려다니’도록 학교교육 얼거리를 짭니다.



평범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잘 작동하는 방식과 그렇지 못한 방식을 평가하고, 우리의 사고를 정립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 전략과 보완방법에 대해서도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13쪽)


인간은 그저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왜 그것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낟. (119쪽)



  왜 오늘날에는 ‘보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려고 할까요? 왜 오늘날에는 모든 아이들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야만 할까요?


  말은 보통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교과서 지식하고 정보만 달달 외워서 시험문제 풀이를 하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허울은 의무교육이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은 교과서를 쳐다보면서 ‘교과서 밖 이야기’에는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도록 내모는 얼거리입니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교과서 밖’을 살피기 퍽 어렵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꽤 많이 나옵니다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 교과서 진도 보조교재 구실’에서 크게 못 벗어납니다. ‘교과서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글월을 책에 버젓이 찍으면서 펴내는 어린이책하고 청소년책이라고 할까요.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서 어린이책이나 청소년책이 바뀌는 얼거리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자라도록 북돋우려는 어린이책이 아직 드문 한국 사회요, 청소년이 청소년답게 꿈을 키우도록 도우려는 청소년책이 아직 모자란 한국 사회입니다.



학교교육의 실제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사회에서 중앙관료들이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있고, 숙달해야 할 지식의 본질에 대해 공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155쪽)


수학에서 유클리드의 증명을 완벽히 체득하거나 모든 대수공식과 삼각비공식을 반드시 습득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모든 형태를 공부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과학자, 기하학자, 예술가, 역사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껏 사례들을 충분하고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179쪽)



  역사 교과서를 중앙정부에서 쓰는 대로 아이들이 배워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참’이라고 하는 대목에 길듭니다. 나라에서 가르치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설마 거짓을 가르치겠느냐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다른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한국말은 중앙정부가 국정교과서로 슬기롭게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사랑스레 쓰도록 북돋우거나 돕는 국정교과서인가요, 아니면 ‘기초지식’이나 ‘시험지식’에 얽매이는 한국말 교과서일까요? 영어 교과서는 어떠하고, 과학 교과서나 수학 교과서는 어떠할까요? 영어를 왜 어떻게 얼마나 배워서 이러한 영어를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써야 즐거운가 같은 대목을 교과서로 슬기롭게 보여줄는지요?



교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초기에 형성된 부적절한 표상과 오개념이 지속되는 데 가담하게 된다.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장려하지 않고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하는 필기시험 … 학생들이 단순히 교재와 수업내용을 암기했는지를 평가할 뿐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도록 도전할 의욕을 주지 않는 필기시험 환경 … (186쪽)


궁극적으로 진실, 아름다움, 선함의 문제에 대한 사회의 답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질문과 답은 더욱더 중요하다. 진실, 아름다움, 선함 사이의 접점과 반향들은 그것의 독특한 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327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고 하는 인문책은 제도권 학교교육에서 담아내어 아이들을 이끌 틀을 어떻게 세울 때에 알맞거나 올바른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짚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똑똑하게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을 차분히 바라보면서 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짚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는 얼거리보다는, 한 가지 지식이라도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와 꽃을 골고루 살펴서 제대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관찰하고 증명했다. 나는 사실 미국인들이 독특한 여섯 가지 경로들을 만들고 지킬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353쪽)



  모든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앞서 집에서 배웁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먼저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보육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사랑을 받고, 제 보금자리에서 삶을 물려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사로운 손길로 즐겁게 사랑을 베풀면서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구는 삶을 지켜보면서 저마다 새롭게 삶을 짓는 꿈을 키우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어느 만큼 나이를 먹은 뒤에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나이가 된 뒤에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꿈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으면, 이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길을 떠나지요. 꿈이 없는 아이들은 배움길을 나서지 못해요. 꿈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채 또래 무리가 좁은 울타리인 학교에 갇히니, 이러한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 따위가 자꾸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이 없는 또래 무리는 아름다운 길보다는 바보스러운 짓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들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 (360쪽)


한 가지 방식으로 일하는 법만 배운 기관들은 힘이 들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363쪽)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합니다. 이런 책은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읽고서 배울 만한 책입니다. 교육부라든지 중앙정부 공무원이 책상맡에서 서류만 붙잡지 말고 이런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하루를 짓지 못합니다.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가꾸지 않고서는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똑같은 몸짓은 똑같은 하루를 빚습니다. 새로운 몸짓은 새로운 하루를 빚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어떻게 노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셔요. 이렇게만 해도 ‘어른’들은 아주 쉽게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쁘게 웃고 차분하게 노래하는 아이들은 ‘똑같은 놀이’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훑는 눈길로는 아이들 놀이가 다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참말 똑같은 놀이를 안 합니다. 늘 조금씩 새롭게 바꾸어서 한결 재미나게 놀이를 누립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마을과 학교에서도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지 못하면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삶에서 배우기에 이웃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배웁니다. 학교가 학교다우려면 중앙정부 손길을 되도록 덜 타거나 안 타면서, 마을이나 고장에서 조그마한 지역자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 졸업장을 받지 않는다면, 졸업장을 따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라면, 참말 학교는 슬기롭고 올바르게 학교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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