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책을 읽어’ 주셔요
오늘도 방송국 한 곳에서 전화가 온다. 어떤 방송을 찍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전화가 올 적마다 늘 ‘같은 흐름’이다. 애써 전화까지 한다면 ‘방송 촬영 결정’을 마친 채 전화를 해야 할 텐데, ‘사전 조사’를 한다면서 전화를 하기 일쑤이다.
몇 차례 이런 ‘사전 조사’ 같은 전화를 받으면서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 일꾼들이 내가 쓴 책을 사서 읽어 보면, 내 정보는 다 나올 텐데, 어찌하여 ‘책을 쓰는 사람’을 방송으로 취재해서 풀그림으로 짜서 텔레비전에 내보내려 하면서도 내 책을 한두 권도 안 읽을 수 있을까? 내 책을 읽지 않고서 나라고 하는 사람을 어느 만큼 알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책을 다섯 권쯤은 읽고, 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어느 만큼 꾸준히 읽은 뒤에 ‘나한테 묻고 싶은 이야기’나 ‘내가 시골에서 사는 이야기’ 가운데 궁금하거나 재미있다고 여기는 어떤 대목을 찍겠노라 하고 밝혀야 알맞지 않을까?
부디 책을 읽어 주면 고맙겠다. 책값 얼마 안 한다. 그리고, 내 책이 그리 ‘재미없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내 책을 읽고 재미없다고 느꼈으면 나를 취재하거나 촬영하지 않으면 되고, 내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꼈으면 씩씩하게 ‘방송으로 찍으려 합니다. 찍게 해 주셔요!’ 하고 외쳐 주시기를 빈다.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