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5년 10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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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스스로 자라는 나무처럼


  나무는 해마다 자라며 줄기와 가지가 굵습니다. 차츰 커지는 품으로 그늘을 한결 넓게 베풉니다. 나무가 크는 만큼 드센 바람을 막고, 멧새는 더 많이 찾아듭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보면, 능금꽃이 하얗게 핀 흙길을 마차가 지나가요. 능금나무는 키가 매우 커서 능금나무가 우거진 사잇길을 마차가 넉넉하게 달립니다. 능금 따는 철에는 누구나 사다리를 능금나무에 대고 올라가서 가지가 다치지 않도록 열매만 알뜰히 땁니다.

  한국에 있는 능금밭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무럭무럭 자라는 능금나무 가지를 휘거나 꺾지 않는 능금밭은 얼마나 될까요? 나무가 자라는 결에 맞추어 사다리를 받치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려는 능금밭 일꾼은 몇이나 될까요?

  무화과밭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해마다 가지를 뭉텅뭉텅 쳐야 더 굵은 알이 맺는다고 하면서 굵은 쇠줄로 나무를 땅바닥에 바싹 닿도록 꽁꽁 묶기도 합니다. 그리 높지 않은 비닐집에 무화과나무를 앉은뱅이처럼 가두고 이리저리 묶고 당겨서 더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옥 같은 무화과밭이나 능금밭에 ‘체험학습’을 하러 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한 그루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야 비로소 ‘나무’인 줄 모릅니다. 나무에서 얻는 열매에 담긴 ‘성분과 효능’만 따질 뿐, 시달리거나 들볶인 나무에서 맺는 열매가 참말 사람한테도 이바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나 감나무나 모과나무는 그저 그대로 자랍니다. 따로 가지치기를 안 합니다. 우리 집 나무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지가 굵습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무화과알이 더 많이 맺는데,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걸상이나 사다리를 받쳐서 열매를 땁니다. 아이들이 손수 열매를 따고 싶다고 하면 걸상을 받쳐서 올라가도록 합니다.

  우리 집은 아직 ‘땅갈이’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집은 꽤 오래 빈집이었지만, 무척 오랫동안 쓰레기가 파묻힌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파낸 뒤 이 땅을 여러 해 묵힙니다. 따로 아무것도 안 심고 갈지도 않으면서 가끔 풀을 베어 눕혀 주기만 합니다. 그런데 갈지 않았어도 땅이 제법 폭신합니다.

  일본에서 마흔 해 즈음 자연농을 했다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눌민,2015)이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일본 시골지기는 “논두렁길은 풀뿌리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풀을 없애버리면 풀뿌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무너져버립니다. 땅을 갈지 않으면 흙은 부드러워진 곳과 만나게 되므로 ‘아, 역시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7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풀들과 작은 동물이 동시에 살아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반년 안에 죽고 그 시체가 다음 생명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봄에 싹을 낸 풀이 자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어미가 죽으면, 지금까지 없었던 다른 성분을 만들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79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문득 생각해 보아도 이 나라 거의 모든 논밭은 땅이 딱딱합니다. 밭일을 하는 분들은 해마다 기계를 써서 밭을 갈아엎습니다. 기계가 아니고는 밭일을 못하는데 밭은 해마다 더 딱딱해지지 싶어요. 사막처럼 된다고 할까요. 논도 물이 빠지면 이내 딱딱해집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아무 풀도 돋지 않으면서 겨우내 딱딱해져요. 봄이 되어 딱딱한 논은 들풀이 돋으면 이때부터 흙이 보들보들 풀립니다. 이와 달리 어느 누구도 비료나 농약조차 안 주는 숲은 흙이 늘 아주 폭신합니다. 아무도 숲을 갈지 않아요. 아무도 숲에 기계를 들이밀지 않아요. 그러나 ‘땅갈이’를 하지 않는 숲은 흙이 까무잡잡할 뿐 아니라 폭신합니다. 게다가 어떤 나무이든 숲에서 아주 잘 자라요. 우리 집에서도 땅갈이를 안 하고 풀만 가끔 벨 뿐 그대로 두는 자리는 흙이 까무잡잡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고 폭신합니다. 우리 집에서 묵히는 땅에 있는 흙은 어떤 나무이든 잘 자라도록 할 만큼 기름지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하고 우리 집 무화과를 따고 감을 따면서 생각합니다. 나무가 제 결대로 자라면서 해마다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생각합니다. 기계가 들어가고 비료와 농약을 맞아야 하는 땅은 까무잡잡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누렇거나 허옇게 바뀝니다. 비닐로 덮어씌우면 흙은 더욱 누르스름해지다가 허연 기운이 퍼집니다. 햇볕을 쬐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갖은 들풀이 자라는 흙은 언제나 까무잡잡하면서 폭신하고 구수합니다.

  나무는 비닐집에서 자랄 수 없습니다.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나무는 제대로 못 자라면서 일찍 죽습니다. 들을 숲처럼 가꾸지 않는다면 남새도 나무도 모두 들볶이다가 일찌감치 죽을 테고,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산다면 사람도 모두 끙끙 앓다가 제 결을 잃겠구나 싶습니다.

  해마다 자라는 나무를 이러한 결대로 바라볼 수 없다면, 사람은 무엇을 얻거나 배우거나 누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뿐 아니라 아이와 어른도 해마다 꾸준히 자랄 텐데, 슬기롭게 자라면서 아름답게 철드는 사람이 아니라 ‘가지치기’를 받아야 하는 나무처럼 ‘틀에 박힌 굴레’에 갇힌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화학농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먹이는데, 비닐집에서 하거나 나무를 들볶는 유기농이라면 화학농보다 무엇이 얼마나 나을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은 시골스러우면서 숲내음이 날 때에 비로소 시골이요, 시골밥은 숲내음이 퍼지는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일 때에 싱그러운 숨결로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하늘숨 마신 무화과알을 날마다 몇 알씩 따서 아이들하고 노래하면서 먹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을 적마다 나무한테 고맙다고 절을 하며 나뭇줄기를 어루만집니다.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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