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먹은 가을잎



  발그스름하게 물드는 가을잎이 참 곱네 싶어 고개를 든다. 벌레먹은 잎이 먼저 보인다. 아니, 벌레먹은 잎이 반갑다. 이곳에도 벌레먹은 잎이 있구나. 그리 나쁘지는 않네. 깊은 숲이라면 벌레먹은 잎이 마땅히 있을 테지만 서울 한복판이나 공원 같은 데는 아주 쉽게 농약을 치니까 벌레가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지만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벌레가 있어서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구나.


  벌레 네가 있어서 흙이 싱그럽다. 벌레 네가 있어서 새 흙이 깨어난다. 벌레 네가 있어서 숲에서 푸른 바람이 분다. 벌레 네가 있어서 새가 노래한다. 벌레 네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 별에서 오순도순 어우러진다. 참말로, 벌레먹은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라면, 벌레가 한 마리도 깃들지 못하는 나무만 있는 공원이라면, 그런 곳은 얼마나 메마르면서 괴괴할까.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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