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48] 배롱꽃빛 옷
곁님이 배움마실을 다녀오면서 내 옷을 한 벌 선물해 줍니다. 반소매 웃옷입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이 옷을 보더니 “아버지, 이 옷 분홍이야?”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니.” 하고 말합니다. “그럼?” 하고 다시 묻는 아이한테 “배롱꽃빛이야.”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아, 우리 마을에 있는 배롱나무 꽃!” 하고, 이내 “나도 알아 배롱꽃빛! 배롱꽃빛 좋아. 그렇구나. 분홍은 배롱꽃빛이로구나.” 하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배롱꽃빛을 분홍이라고도 하지.” 하고 말을 바로잡아 줍니다. 선물받은 새 반소매옷을 입고 장흥으로 바깥일을 보러 나옵니다. 장흥고등학교 푸름이하고 장흥 이웃님이 쉰 분쯤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옵니다. 이곳에 저처럼 ‘배롱꽃빛’이 나는 웃옷을 입은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새삼스레 웃으면서 “저기, 배롱꽃빛 옷을 입으신 분?” 하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은 못 알아들으십니다. 다시 “저기 분홍 옷 입으신 분이요.” 하고 말하니 곧 알아차리십니다. 장흥이나 고흥에서는 흔히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인데, ‘배롱꽃 + 빛’인 ‘배롱꽃빛’이라는 빛깔말이 아직 낯설 만하겠지요. 진달래꽃빛하고 배롱꽃빛이라는 말마디를, ‘꽃말’을, 시골말을, 숲말을 고요히 읊습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