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한 자루 켜는 마음



  촛불을 켭니다. 초를 아끼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촛불을 켭니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촛불을 켭니다. “아버지 초 왜 켜?” 하고 묻는 아이한테 “응, 이제부터 밥을 차리니까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보라고.” 밥을 먹는 동안 초를 볼 일은 없지만, 문득 초를 느낍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촛불을 잊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떠올리면서 “아버지, 촛불 껴요?” 하고 묻습니다.


  책상맡에서 일하며 초를 켭니다. 몸이 몹시 고단해서 얼른 자리에 드러눕기 앞서 초를 켭니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가만히 앉아서 초를 바라봅니다. 깊은 밤에 전깃불을 켜고 싶지는 않아서 초 한 자루를 살며시 켜기도 합니다. 촛불에 기대어 책을 천천히 읽어 봅니다. 전깃불 아닌 촛불에 기대어 읽는 책은 사뭇 다릅니다. 창문을 모조리 닫아서 조용하기만 한 커다란 도서관이 아닌, 시골마을 작은 숲에서 읽는 책은 사뭇 다르듯이, 초 한 자루를 켜는 삶은 늘 사뭇 다릅니다.


  내가 먼저 촛불에 녹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촛불에 녹습니다. 내 몸을 녹이고 내 마음을 녹여서 새로운 몸이랑 마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초 한 자루를 켭니다. 앙금도 아쉬움도 시샘도 걱정도 고단함도 모두 촛불에 천천히 태워서 녹인 뒤, 마음 가득 담으려 하는 꿈과 사랑을 새롭게 그립니다. 4348.9.2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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