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지내야 하는 이가 받은 책선물



  하루를 거의 누워서 보낸다. 책상맡에 앉아서 일할 때하고 부엌일을 할 때하고 마당이나 뒤꼍에서 풀을 베거나 해바라기를 할 때를 빼고는 으레 이부자리에 드러눕는다. 오른무릎이 다친 지 열이레가 지나는데 아직 오른무릎이 성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일어나서 움직이거나 일하거나 걸어도 오른무릎을 쉬어 주어야 한다. 그냥 쉬지도 못하고 누워서 쉰다.


  이렇게 아파서 이렇게 오래 누워서 지낸 적이 있는가 하고 돌아본다. 군대에서는 아무리 아파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어서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면서 스물여섯 달을 가까스로 견뎠다. 신문배달을 할 적에는 어떻든 날마다 새벽에 신문을 돌려야 하니 아픈 데가 있어도 꾹 참고 일을 마친 뒤 곧바로 쓰러졌다. 곁님을 만나서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 꽤 오래 혼자 살았던 터라 아프든 힘들든 ‘드러누울’ 수 없었는데,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는 요즈음 그냥 드러눕는다.


  아픈 오른무릎을 어루만지면서 누운 몸으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참으로 잘 논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픈 아버지 곁에서 놀아 준다. 아마 아버지더러 심심하지 말라는 뜻이지 싶다. 많이 아프면 까무룩 잠이 들고, 덜 아프면 멀뚱멀뚱 누우니, 누워서 다리를 달래며 책을 많이 읽는다. 아파서 날마다 오랫동안 누우며 지내고 보니 책을 펼칠 틈이 꽤 많이 난다. 이런 요즈음 도톰하면서 야무진 책을 선물로 받는다. 도톰하고 야무지면서 무거운 책은 그야말로 ‘누워서 읽기에 좋’다고 할 만하다.


  서울에서 고흥까지 날아온 책선물을 쓰다듬는다.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조용히 덮을 즈음에는 더 앓아눕지 말고 씩씩하게 일어서서 가을볕과 가을내음을 한껏 누리자고 다짐해 본다.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눈부시게 튼튼하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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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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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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