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새벽에 설거지하기
아직 몸이 많이 무겁다. 조금만 움직여도 쉬 지쳐서 누워야 한다. 기운을 내려고 억지로 밥을 먹지만, 밥을 먹으면 외려 졸음이 쏟아진다. 벌써 보름째 시름시름 앓는 몸이요 흔들흔들 어지러운 몸이다. 보름 넘게 아이들을 놀이터로 데려가지도 못하고 자전거도 태울 수 없으니, 아이들은 참으로 대견하게 아버지를 기다려 주는 셈이다. 어제 저녁에는 아주 일찍 드러누워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만 귓결로 듣다가 아이들한테 말로만 이를 닦으라느니 부엌 불을 끄라느니 방바닥을 좀 치우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라느니 하고 이른다. 깊은 새벽에 허리가 결려서 일어난 뒤 설거지를 조금 한다. 얼른 낫자. 얼른 털고 일어나자. 얼른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자. 이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놀고 노래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가까운 마실조차 못 다니는 몸이 되다 보니, 이 가을에 산타 할머니가 하늘에서 과자꾸러미를 눈송이처럼 펄펄 내려 주어 아이들이 선물로 받는 꿈까지 꾼다. 아침에 무화과를 좀 많이 따서 주전부리로 먹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동이 트려 한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