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돈으로 책을 사니?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내 주머니가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그저 침만 흘리는 책이 참 많다. 참말 장만해서 곁에 두고 즐거이 읽고 싶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막상 장만하지 못한 책을 꼽자면 아마 2∼3만 권쯤 되리라 본다. 아니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돈이 없어서 못 산다’고 여긴 책은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하면서 그동안 책을 얼마쯤 장만했을까? 아마 4∼5만 권쯤 넉넉히 장만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한손으로는 ‘돈이 없어서 저 책을 못 사는구나!’ 하고 땅을 치면서도, 다른 한손으로는 ‘이 가난한 주머니로도 꼭 이 책만큼은 사고야 말겠어!’ 하는 다짐으로 씩씩하고 꿋꿋하게 장만한 책들이 있다.
나는 나한테 묻는다. ‘얘, 다른 사람 말고 바로 너 말이야, 넌 돈으로 책을 사니? 넌 참말 돈이 없어서 네가 읽으려던 책을 못 읽었니?’
스스로 묻는 말에 스스로 할 말이 없다. 돈이 없어서 못 사는 책이 있었다기보다는 ‘내 마음을 오롯이 쏟아서 어느 책 하나를 끝끝내 장만하려는 몸짓’이 없었다고 해야 옳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장만해서 읽지는 않는다. 돈이 넉넉한 사람이라고 해서 ‘스스로 하고픈 공부’를 모두 신나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돈이 없으면 미국이나 프랑스나 일본으로 배움길을 나서기 어렵겠지. 배표나 비행기표조차 장만하지 못해서 눈물만 삼킬 수 있을 테지. 그렇지만 참말 제대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배표나 비행기표를 장만하려고 여러 해에 걸쳐서 돈을 모은다. 스무 해에 걸쳐서 푼푼이 돈을 모은 뒤 ‘매우 늦은 나이’라고 하는 때에 씩씩하게 배움길에 나서기도 한다.
배우려고 할 때에 배운다. 배우려고 하는 몸짓이 덜 무르익었다면 배우지 못한다. 읽으려고 할 때에 읽는다. 읽으려고 하는 숨결이 덜 무르익었다면 읽지 못한다.
책은 누가 읽는가? 책은 누가 사는가? 책은 스스로 배우면서 삶을 가꾸려는 사람이 읽는다. 책은 스스로 배우는 길을 기쁘게 걸어가려는 사람이 기꺼이 장만하고 사들이며 마련한다. 4348.9.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