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푸른 밤송이 빛깔



  집에 밤나무가 있으면 밤꽃이 피고 진 뒤에 밤알이 맺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볼 수 있다. 집에 논이 있으면 손수 어린 싹을 심은 뒤 천천히 자라는 모습을 날마다 꾸준히 살펴볼 수 있다. 하루아침에 짠 하고 생기는 열매는 없다. 모든 열매는 저마다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을 두루 맞아들이면서 익는다. 꽃송이에서 씨앗을 품은 열매가 자라고, 씨앗을 품은 열매는 푸른 빛깔이 가득한 풋알에서 차츰 짙고 알록달록한 새 빛깔로 거듭나는 달콤한 열매가 된다.


  가을에 잘 익은 밤알을 떠올린다면 으레 흙빛 닮은 밤송이를 생각할 텐데, 천천히 익는 밤송이는 아직 풋알일 적에 옅푸른 빛깔이 곱다. 어쩜 밤송이 풀가시는 이렇게 고운 풀빛일 수 있을까. 보들보들하면서 싱그러운 숨결이 가득한 밤송이 풀가시는 어떤 열매를 속에 품을까. 저 풀가시 안쪽에 달달하고 아삭아삭한 밤알이 단단히 맺는 줄 누가 알 수 있을까. 참말 어떤 사람이 저 풀가시 안쪽에 깃든 맛난 열매를 맨 먼저 알아보았을까. 4348.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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