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하룻밤
서울에 온갖 은행은 많은데, 우체국은 좀처럼 안 보인다. 서울에 자동차는 많은데, 걷는 사람이 다리를 쉴 만한 곳은 거의 안 보인다. 서울은 워낙 이리저리 넓은 탓에, 길에서 보내야 하는 겨를이 참 길구나. 뭐 하나 하려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여도 30분이나 한 시간은 뚝딱 흐르네. 토막토막 자그마한 겨를을 길에서 흘리는 동안 서울사람은 서울 한복판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자동차를 몰거나 자전거를 달리거나 길을 걸으려면 둘레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떤 자동차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앞을 걷던 사람이 갑자기 몸을 틀어서 뒤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워낙 많기에 조금만 마음을 쓰지 않으면 누구하고든 쉽게 부딪힐 만하고, 턱에 발을 찧을 만하며, 길을 헤맬 만하다. 서울에서 살거나 움직일 적에는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보아야 하는 모습’을 보느라 바쁘다. 내 생각에 맞추어 몸이 움직이기보다는 둘레 터전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최종규/숲노래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