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되다



  밤새 앓으면서 목이 하도 타서 작은아이한테 물 한 모금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작은아이는 그야말로 작은 잔에 물을 따라서 천천히 들고 온다.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속이 시원하지 않고 외려 더 어질거리면서 오줌이 마렵다. 아플 적에는 아무것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셔야 하는데, 목이 타서 괴로워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 크게 애먹는다. 어제 깨진 오른무릎을 쓸 수 없어서 자리에 서지 못하니, 궁둥걸음으로 씻는방까지 천천히 간다. 겨우 씻는방에 서서 오줌을 눈다. 어쩌다가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엉금엉금 다니기에, 아이들한테 “얘들아, 아버지는 아기가 되었네.” 하고 말한다. 두 아이는 아버지 말을 듣고는 “아버지는 아직 안 기어다니잖아.” “애기는 기어다니잖아.” 하고 얘기한다. 그래, 아버지가 무릎을 써서 기지 못하고 궁둥이로 바닥을 밀면서 다니니, 이 몸짓은 ‘기어다니기’가 아니라는 뜻이로구나.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이리로 돌려눕고 저리로 돌려눕고, 이 두 가지밖에 못하는걸. 어서 아기 티를 벗고 어른으로 새롭게 일어서야지.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야지. 4348.9.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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