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편지를 쓰기



  아침에 편지를 쓴다. 다음주에 서울에서 어떤 이야기잔치(강좌)가 있는데, 그 잔치에 와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쭈는 편지에 쓰는 답장이다. 어젯밤에 편지를 받고서 밤새 망설인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 이야기잔치에 고맙게 가겠습니다’ 하는 말을 붙여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동안, 또 편지를 쓰고 나서, 한참 생각에 잠긴다. 어제 불린 미역을 헹구고, 새벽부터 불리는 쌀도 새롭게 헹구며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이 잘 놀도록 마루를 건사한 뒤에 또 생각에 잠긴다.


  이야기를 나누자고 부르는 손길은 언제나 고맙다. 그저 기쁘게 배우면서 삶을 노래하려는 먼먼 이웃들이 부르는 손길은 참으로 고맙다. 홀가분하게 마실을 해야지. 노래하면서 마실을 해야지.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을까? 혼자 가야 할까? 저녁 늦은 때에 하는 이야기잔치라서 아무래도 혼자 가야지 싶은데, 지난 열 몇 해 동안 쌓인 앙금을 푸는 이야기잔치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한 발짝 내딛는 이야기꽃잔치가 될 수 있도록 잘 여미자고 다짐한다. 4348.9.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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