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23.

 : 늦여름 골짜기에서



늦여름이 되어 골짜기로 다시 가기로 한다. 올여름에는 집에서 많이 놀았다. 바다에도 골짜기에도 잘 안 가고, 집에 있는 욕조에서 두 아이가 물장구도 치면서 하루에도 너덧 차례씩 놀았다. 이즈막에는 골짜기에 올 사람이 크게 줄거나 얼마 없겠지 하고 여기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마을 어귀 빨래터 앞까지 자전거를 끌고 간다. 두 아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린다. 나는 배롱나무 밑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두 아이는 이리저리 달린 끝에 자전거 있는 데로 온다. “보라야! 우리 골짜기 가야지! 자전거 타러 가자!” “맞아! 골짜기!” 두 아이는 달리면서 놀다가 골짜기 가기로 한 줄 잊은 듯하다. 재미난 아이들이다.


큰아이가 바람이를 든다. 작은아이가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가 바람이를 작은아이 목에 씌워 준다. 작은아이 바람이는 구멍이 나서 쓸 수 없다. 바람이는 하나만 들고 간다.


늘 가던 길 말고 새로운 길로 가자고 생각하면서 논둑길을 한 바퀴 돌아본다. 논둑길을 달리다가 나락꽃 핀 냄새가 짙어서 발판질을 멈추고 자전거를 세운다. “아버지, 더워. 빨리 가자.” “골짜기에는 곧 갈 텐데. 그보다 이리 와 봐. 나락꽃 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한 해에 꼭 하루만 볼 수 있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단 말이지.” 시골순이와 시골돌이는 아직 나락꽃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아직 우리 논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논이 있어서 우리가 손수 볍씨를 심고 가꾼다면, ‘우리 나락꽃’이라면서 아주 기뻐할 텐데.


그렇지만 아버지는 다른 논둑길을 달리다가 또 자전거를 세운다. 나락 곁에서 나락 익는 냄새를 맡자고 아이들을 부른다. 모두 더워서 땀이 흐르지만,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우니 여기에서 나락꽃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우리 집 나락꽃이 아니어도 우리 마을 나락꽃이고,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 나락꽃이다.


골짜기로 가는 고갯길 한쪽은 몇 해째 공사를 한다. 못물이 흘러내리는 여느 물길을 시멘트길로 바꾸는 공사이다. 길바닥에 자갈을 깐 자리는 몇 해째 그대로 두면서, 못물이 흘러내리는 물길을 시멘트길로 한다면, 앞으로 이 시멘트 물길은 어떻게 될까. 숲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흙에 시멘트가 섞여서 바다까지 가야 하는가. 4대강사업도 그렇지만, 냇바닥을 시멘트로 바꾸는 짓은 숲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바다까지 망가뜨리고 만다. 오늘 정책을 세워서 공무집행을 하는 공무원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 뒤는 하나도 못 내다본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숲’과 ‘물길’을 망가뜨린 탓에 바다가 망가져서 고기를 못 낚는 끔찍한 일을 겪은 뒤, 숲을 되살리고 ‘흙물길’로 되돌리는 사업을 꾀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흙물길’을 밀어서 없앤 뒤 ‘시멘트 물길’로 바꾸는 짓을 일삼는다.


골짜기에서 한참 논다. 골짝물이 따뜻하다. 차갑지 않고 따뜻하니 아이들이 꽤 오랫동안 잘 논다. 즐겁게 놀고서 바위에 앉아서 몸을 말린 뒤 옷을 갈아입는다. 내리막에서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른다. 집으로 돌아와서 늦은 샛밥을 챙겨서 함께 먹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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