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7.

 : 네 아버지가 힘에 부칠 때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옮겨 놓고, 면소재지에 들러서 소포를 부친다. 바쁘게 볼일을 마쳤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천천히 몬다. 우리가 자전거로 밟아 보지 않은 요 둘레 새로운 길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달려 본다. 그리 넓지 않은 시골이기는 하지만 안 달려 본 길이 거의 없네 하고 느끼면서 이곳저곳 지나간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하얗고 하늘빛은 파랗고 들빛은 푸르고, 이래저래 싱그러운 여름이다.


내 어린 나날을 문득 돌아본다. 팔월 한복판을 넘어서는 이맘때는 학교에서 방학이 끝날 무렵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집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하루 내내 쳐다보지 않아도 한시름을 던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고 집에서 노니까, 방학이든 개학이든 대수롭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하루 내내 늘 제 어버이하고 붙어서 지낸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한 해 내내 다달이 다르고 나날이 다른 바람을 들에서 쐴 수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아침 낮 저녁에 따라 다른 바람결을 언제나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 뭔가 남다르거나 대단한 어떤 놀이나 일을 해야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침바람을 함께 쐬고, 한낮에 뜨거운 뙤약볕을 함께 쬐며, 저녁에 싱그럽게 가라앉으면서 부는 바람결에 실리는 가벼운 기운을 함께 느낀다.


이래저래 길을 좀 돌아서 집으로 가다 보니 다리와 등허리에 힘이 풀린다. 논둑길을 한참 달리다가 아무래도 힘들구나 싶어서 자전거에서 내린다. 히유, 한숨을 돌린 뒤 아이들이 물을 마시도록 한다. 너희들도 참 대단하지, 이런 더위에도 아버지랑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다니잖니.


큰아이는 집에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면서 사뿐사뿐 저만치 앞장서서 달린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걷겠노라 하다가 “나 이제 탈래.” 하면서 수레에 탄다. 구름이 그늘을 드리우다가 다시 땡볕이 나다가, 구름이 쉴새없이 새 모습을 베풀어 준다. 등허리와 다리를 웬만큼 쉬었으니 큰아이더러 “자, 이제 타고 가자. 땡볕이 더우니 얼른 가자.” 하고 말한다. 뛰듯이 걸으면서 가고 싶다는 낯빛인 큰아이를 겨우 샛자전거에 태운다. 이렇게 씩씩하고 야무진 아이가 어디 있을까. 참말 큰아이는 십 킬로미터 길조차 씩씩하게 걷는다.


논둑에서 돌콩꽃이랑 돌콩꼬투리를 본다. 살짝 멈추어 들여다본다. 우리 집에도 나는 돌콩이고 논둑이나 밭둑이나 빈 들녘에 가득 돋는 돌콩이다. 마을 어귀에 이를 무렵 작은 군내버스가 지나간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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