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결



  붓솜씨가 뛰어나거나 손놀림이 훌륭한 그림책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붓솜씨나 뛰어난 그림책은 ‘붓솜씨가 뛰어나네’ 하는 생각이 들고, 손놀림이 훌륭한 그림책은 ‘손놀림이 훌륭하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폭력을 이야깃감으로 삼은 그림책은 ‘학교폭력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동생하고 옥신각신하는 이야깃감을 보여주는 그림책은 ‘동생하고 옥신각신하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모든 그림책은 저마다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나는 그림책을 고를 적에 뛰어난 붓솜씨나 훌륭한 손놀림이 깃든 그림책을 딱히 쳐다보지 않습니다. 남다른 줄거리나 눈에 뜨인다는 이야깃감을 건드리는 그림책을 그다지 쳐다보지 않습니다. 내가 고르는 그림책이라면, 나하고 아이 모두한테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사랑을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줄거리나 이야깃감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붓솜씨나 그림결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을 적에는 아주 멋진 그림 솜씨를 볼 뜻이 아닙니다. 그림책을 아이한테 보여줄 적에는 매우 재미난 줄거리를 알려줄 뜻이 아닙니다.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삶을 기쁜 웃음으로 짓는 사랑을 헤아리려고 나부터 그림책을 읽고, 나부터 즐긴 그림책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읽히려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어버이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먼저 기쁘게 누린 그림책’을 ‘아이한테 물려준다’고 하겠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그림책’을 골라서 읽는다고 할까요. 아이하고 도란도란 웃고 노래하면서 즐길 만한 그림책을 살펴서 읽는다고 할까요.


  그림을 잘 그리는 그림책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그림책이라면 오래도록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는 그림책이라면 우리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뒤, 나중에 제 아이한테 새롭게 물려줄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8.8.1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