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다가



  고흥에서 인천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지난해 가을 무렵인가 처음으로 생겼다. 이제 고흥에서 인천을 오갈 적에 서울까지 멀리 돌아가야 하는 일이 없다. 찻삯도 꽤 줄고, 품도 줄며, 시간도 줄인다. 적어도 두 시간 반은 버스나 전철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몹시 고맙다고 생각하면서 두 아이 차표를 모두 끊었다. 작은아이(다섯 살) 표는 안 끊어도 된다 하고, 또 고흥하고 인천 오가는 시외버스는 자리가 1/3은커녕 1/5도 안 차기 일쑤이지만, 일부러 작은아이 차표까지 끊었다. 이런 시외버스가 생겨서 고맙다고 생각하니까.


  시외버스가 세 시간쯤 달릴 무렵 작은아이가 잠드는데, 책 한 권 꺼내어 읽는 내내 자꾸 졸음이 쏟아져서 스무 쪽쯤 남기고 한 권을 다 못 읽었다. 다섯 시간 남짓 시외버스를 달리면 책 서너 권은 가볍게 읽기 마련인데, 어제는 책 한 권조차 못 떼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달래고 놀고 그러느라 책을 손에 못 쥐기도 했지만, 바깥마실을 나오려고 고흥집에서 여러 날 힘을 많이 쏟았는지 그야말로 졸음이 쏟아졌다.


  바깥마실을 나오면 고흥집에서처럼 아이들이 실컷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면서 놀기 어렵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도시에서 얌전하고 착하게 노는 길을 슬기롭게 깨닫는 듯하다. 대단히 고마운 노릇이다. 4348.7.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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