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71. 모과꽃
사월에 피었다가 오월이면 이내 사라지는 모과꽃입니다. 삼월에 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 부풀다가 사월에 피고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는 모과꽃입니다. 오월꽃은 사월부터 피어나려고 살풋살풋 고개를 내밀고는 유월이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유월꽃은 오월부터 몽실몽실 한껏 부풀더니 칠월이면 자취를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봄꽃은 여름에 없고, 여름꽃은 봄이나 가을에 없습니다. 가을꽃은 여름이나 겨울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겨울꽃은 오직 겨울에만 흐드러집니다.
한 해에 꼭 한 번 피어나는 꽃은 한 해에 꼭 한 번 눈여겨보아야 만납니다. 한 해에 꼭 한 번 피어나는 꽃은 한 해에 꼭 한 번 피어나려고 한 해 내내 기쁘게 햇볕을 받고 바람을 마십니다.
꽃이 활짝 피어 나풀거리는 나날은 아주 짧습니다. 며칠만 피고 스러지는 풀꽃이나 나무꽃이 있고, 이레쯤 봉오리를 벌리고는 어느덧 사라지는 풀꽃하고 나무꽃이 있습니다. 한 포기에서 맺은 꽃송이는 열흘이나 보름을 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짧은 나날만 빛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짧은 동안에만 피어나는 꽃을 한 해 내내 함께 기다립니다. 풀이나 나무도 꽃이 피어나는 한철을 한 해 내내 헤아리면서 기운을 모으고, 사람도 꽃이 피어나는 한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마음을 그러모읍니다.
이월에 동백꽃을 보는 동안 사월에 필 모과꽃을 그리고, 사월에 모과꽃을 보는 사이 유월에 필 치자꽃을 그립니다. 유월에 치자꽃을 보다가 문득 팔월에 어떤 꽃이 피더라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해 봅니다. 팔월꽃하고 시월꽃을 생각합니다. 십이월에 피어날 꽃도 생각합니다. 온갖 꽃은 철 따라 차근차근 피고 지면서 이 지구별에 고운 숨결이 흐르도록 북돋웁니다. 4348.6.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