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생각 9. 빨리 달리기



  자전거를 빨리 달리고 싶다면 다리힘을 길러야 합니다. 발판을 빠르게 밟아서 자전거가 바람처럼 나아가도록 하면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빨리 달릴 적에는 둘레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잡는 손잡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빨리 달릴 적에 손잡이가 흔들리면 그만 자빠지거나 뒹굴 수 있어요.


  자동차를 달릴 적에도 빨리 달린다면 옆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자동차를 빨리 달리는 사람은 손잡이에서 손을 뗄 수 없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앞만, 아주 좁은 앞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빨리 가야 한다면 아주 좁은 앞만 보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애써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가르고 하늘숨을 마시는데, 아주 좁은 앞만 본다면 어떤 재미나 즐거움을 누릴 만할까 궁금해요. 빨리 가고 싶다면 오토바이를 몰거나 자동차를 몰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전거로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빨리 달릴 만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로 빨리 달릴 만한 길이 드뭅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자동차가 대단히 많고 신호등이나 건널목도 많습니다. 게다가 골목에서는 자동차나 사람이 언제 앞으로 나올는지 모르니, 섣불리 빨리 달려서는 안 됩니다. 국도에서도 자전거를 빨리 달리다가 길섶에 있는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밟으면 아슬아슬하기 때문에 함부로 빨리 달리지 말 노릇입니다.


  자전거길에서도 빨리 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다른 이웃이 아슬아슬하거든요. 아무도 없는 호젓한 시골길이라면 혼자서 빨리 달릴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호젓한 시골길에서 빨리 달리기만 한다면, 아름다운 숲을 느긋하게 못 누립니다. 짙푸른 숲바람이 부는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빨리 달리려고만 한다면, 싱그러운 바람도 상큼한 바람노래도 시원한 바람결도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빠르기를 붙잡으려고 하면 삶을 놓칩니다. 빠르게만 가려고 하면 사랑을 못 봅니다. 빠르게 달리고 싶다면 달릴 노릇이기에,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빨리 달릴 적에는 아이들하고 아무런 얘기를 못 나눕니다.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이 그저 빨리 달리려고만 하면 헉헉거리면서 숨이 가쁘니,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저 즐겁고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적에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쐬면서 이야기꽃도 피우고, 둘레 모습을 넉넉히 품을 수 있습니다. 4348.6.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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