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69. 두 가지 꽃
유채꽃이나 갓꽃은 무척 일찍 핍니다. 동백꽃이 한겨울에 피기도 하듯이, 유채꽃이나 갓꽃은 겨울 한복판인 십이월이나 일월이나 이월에도 꽃대를 올려서 노란 꽃송이를 바람 따라 흔들곤 합니다. 노란 꽃송이가 물결처럼 출렁이는 때는 삼월과 사월이지만, 찬바람이 아직 불면서 포근한 볕이 내리쬐면 유채씨와 갓씨에서 새로운 숨결이 깨어납니다.
노란 꽃물결이 일렁일 즈음, 들과 숲에서는 하얀 꽃이 올망졸망 돋습니다. 수많은 들꽃은 흰꽃을 피우는데, 이 가운데 딸기꽃도 하얀 꽃송이입니다. 그래서 삼월 끝자락부터 사월 사이에 도랑이나 풀숲 둘레에서 노랗고 하얀 꽃잔치를 틈틈이 만날 수 있습니다. 유채꽃이나 갓꽃은 꽃대를 높이 올려서 한들거리고, 딸기꽃은 땅바닥에 그리 높지 않은 자리에서 꽃송이를 터뜨리며 고개를 까딱까딱합니다.
‘무지개빛’으로 보여주는 ‘칼라사진’은 노란꽃과 흰꽃을 싱그럽게 보여줍니다. ‘흑백사진’으로 찍어도 노랑과 하양은 살짝 다른 기운으로 찍힐 텐데, 봄이 한껏 무르익을 무렵에 두 가지 꽃이 두 가지 풀빛을 바탕으로 돋는 이야기는 무지개빛으로 담을 적에 참 곱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이 태어나지 않던 지난날에는 이 두 가지 꽃을 그림으로 그렸을 테지요. 사진이 처음 태어나 흑백필름만 있던 때에는 노랑과 하양이 어우러진 숨결을 사진으로도 애틋하게 담고 싶어서 무지개빛 필름을 그예 만들 수 있었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꽃’을 찍습니다. 꽃밭이나 들이나 숲에서 피는 꽃뿐 아니라, 마음에서 피는 꽃을 찍습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마음을 사랑이라는 꽃으로 찍습니다. 어느 갈래에 서는 사진을 찍든 모든 사진은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삶꽃을 찍고, 사랑꽃을 찍으며, 마음꽃을 찍습니다. 생각꽃을 찍고, 이야기꽃을 찍으며, 웃음꽃을 찍습니다. 눈물꽃하고 노래꽃하고 춤꽃을 사진으로 되살립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은 ‘사람꽃’을 찍는 셈입니다. 우리 곁에서 고요히 피고 지는 꽃을 알아볼 때에 ‘사진꽃’은 문화도 되고 예술도 되지만, 무엇보다 삶이 되어 아름답게 흐릅니다. 4348.6.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