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배춧국’이랑 ‘군대 배춧국’



  아침에 배춧국을 끓인다. 배춧국을 끓인 지 몇 해 안 된다. 그동안 배춧국을 보면 좀 진저리를 쳤기 때문이다. 그러면 배춧국에 왜 진저리를 쳤는가? 군대에서 억지로 먹어야 했던 배춧국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서(1995∼1997) 어떤 배춧국을 억지로 먹어야 했는가? 주둔지에 있을 적에 대대 취사병은 배춧국을 그야말로 엉터리로 끓였고, 중대 여느 사병인 우리들은 맛없고 끔찍한 배춧국을 한 해 동안 거의 날마다 먹어야 했다.


  ‘군대 배춧국’은 어떠했는가? 배춧잎을 썰었는지 안 썰었는지 알 수 없도록 큼지막하게 몇 잎 넣고는, 된장을 풀었는지 안 풀었는지 알 수 없도록 겉보기로 된장 빛깔이 나는데, 소금으로 간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도록 싱거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군대 배춧국’에는 어떤 건더기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펑퍼짐한 배춧잎 몇이 살랑살랑 떠다니는데, 아무도 이 펑퍼짐하도록 큰 배춧잎을 건지지 않는다. 몇 번 우려냈는지 알 길이 없을 뿐더러, 눈으로 보기에도 ‘배고픈 군인’으로서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배고파서 한 번 집어서 먹어 본 적 있는데, 입에서 녹지도 씹히지도 않는 어정쩡한 배춧잎이라서, 배고픔을 하나도 가셔 주지 않았다. 우리 중대와 이웃 중대까지 얼추 오백 젊은이가 먹는 배춧국인데 배추 한 통은커녕 배춧잎을 고작 서너 장 썼다고 느끼는 배춧국이었다.


  ‘집 배춧국’을 끓일 적에는 배춧잎을 알맞게 썰어서 넣는다. 무도 알맞게 썰어서 넣는다. 양파와 마늘을 넣고 큰파도 썰어서 넣는다. 아이들이 조금 더 먹기 좋도록 달걀을 한 알 깨서 푼다. 살짝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다. 군대에서 이만 하게라도 배춧국을 주었으면 몇 그릇을 먹었겠지. 그 머얼건 ‘배추된장국 아닌 배추된장국’을 왜 우리한테 먹였을까? 군대에서는 머얼건 ‘배추된장국 아닌 배추된장국’을 끓이면서 빼돌린 군수물자를 어디에 어떻게 내다 팔았을까?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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