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94] 시골꽃 누리는 시골아이처럼
― 들꽃이랑 집꽃이랑 마을꽃
우리 집은 꽃집입니다. 왜 꽃집인가 하면, 꽃이 피어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풀집입니다. 왜 풀집인가 하면, 풀이 싱그러이 돋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나무집입니다. 나무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껏 자랄 수 있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놀이집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수 있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책집입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다가 다리와 몸을 쉬면서 책으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집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랑이 가득하다면 사랑집이 될 테고, 언제나 꿈을 꾼다면 꿈집이 될 테며, 천천히 숲으로 가꾼다면 숲집이 될 테지요.
오월로 접어들면 마을마다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다만, 요즈음 시골자락에서는 염소나 소를 놓아서 키우지 않기에 찔레꽃이 피든 국수꽃이 피든 마삭줄꽃이 피든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들딸기가 맺어도 들딸기를 훑는 어르신은 드뭅니다. 그저 농약을 뿌려서 들딸기조차 죽이고, 풀 베는 기계로 석석 밀어냅니다. 새콤달콤한 들딸기알을 즐기기보다는, 들딸기넝쿨 때문에 따갑다고들 하십니다. 이리하여, 찔레꽃이 한창이라 하더라도 묵은 밭자락이나 길가나 깊은 숲이 아니라면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돌울타리 한쪽에서 자라는 찔레넝쿨이라면 애써 베거나 자르지 않으니 오월 한 달 동안 찔레꽃은 가까스로 살아남을 만합니다.
들에서 보면 들꽃이요, 집에서 보면 집꽃입니다. 들에서 보는 찔레꽃은 ‘들찔레꽃’입니다. 우리 집에서 보는 찔레꽃은 ‘집찔레꽃’일 테지요. 마을에서 피어나는 찔레꽃이라면 ‘마을찔레꽃’이에요. 찔레는 찔레싹도 시원하고, 찔레꽃과 찔레잎도 싱그럽습니다. 모두 맛난 나물이 됩니다. 삼월 끝자락 언저리에 벚꽃잔치를 하거나 진달래꽃잔치를 한다면, 오월에는 찔레꽃잔치를 할 만합니다. 찔레꽃잎을 얹어서 지짐이를 할 수 있습니다. 떡에도 찔레꽃잎을 가만히 올릴 수 있습니다.
꽃이란 무엇일까요. 꽃은 열매나 씨앗을 맺으려고 하는 몸짓이요 사랑입니다. 꽃이 활짝 핀 다음 지기에 열매나 씨앗을 맺을 수 있습니다. 꽃이 없으면 열매도 씨앗도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은 ‘볍씨’인 ‘나락’이고, 벼도 벼꽃을 피워야 비로소 벼알을 맺습니다.
꽃을 보면서 꽃내음을 맡습니다. 꽃내음을 맡으면 저절로 ‘아, 싱그럽구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기쁜 소리와 함께 맑은 웃음이 잇따르고, 고운 노래가 차분하게 흐릅니다. 꽃내음은 벌과 나비와 벌레를 부르고, 벌과 나비와 벌레가 깨어나면 뭇새가 찾아들어 새노래를 부르면서 고운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릅니다.
온누리 모든 집이 꽃집이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꽃을 바라보면서 꽃마음이 되고, 꽃을 아끼면서 꽃말을 나눕니다. 꽃을 보듬으면서 꽃노래를 부르고, 꽃을 보살피면서 꽃웃음을 짓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며 흙을 일굽니다. 씨앗 한 톨을 얻으면서 새 하루를 가꿉니다. 씨앗 한 톨을 이웃하고 주고받으면서 꽃마을이 되고 꽃골목을 이룹니다.
총을 손에 쥐면 전쟁이 되지만, 꽃을 손에 쥐면 평화가 돼요. 전쟁무기로 둘레를 쌓으면 서로 악다구니처럼 다투지만, 꽃밭으로 마을을 돌보면 서로 활짝 웃으면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꽃집에서 자라는 아이는 꽃아이입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꽃어른이 되고 꽃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합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고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