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1 ‘일’과 ‘직업’
한국말사전에서 ‘일’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으로 풀이하고, ‘직업(職業)’이라는 낱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풀이합니다. 아마 오늘날 사회에서는 이렇게 풀이할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직업’은 모르되, ‘일’을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활동”으로 풀이를 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일’이라는 낱말은 여러 곳에서 씁니다. 이 낱말을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만, ‘일’은 처음부터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는 안 썼습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써서 움직이는 모든 삶을 가리켜 ‘일’이라 했어요. 이리하여, 아이한테는 ‘놀이 =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네, 심심하구나.” 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생기지 않거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거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에도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흐름과 움직임이나 몸짓이 나타날 때에 비로소 ‘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스스로 움직여서 무엇을 이루면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직업’이나 ‘노동’이기 때문에 ‘일’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어떤 것을 이루거나 지을 적에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일’이나 ‘옛 일’을 돌아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도울 일’을 찾습니다. ‘기쁜 일’을 함께 기쁘게 여기고, ‘슬픈 일’을 같이 슬프게 삭입니다. 꾸짖거나 나무랄 일이 있을 테고, 북돋우거나 살릴 일이 있을 테지요. ‘네가 다녀오면 될 일’이라든지 ‘손수 나무를 심으면 될 일’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이 있어’야 삶이 있습니다. 노동을 하거나 직업이 있어야 삶이 있지 않아요. ‘일이 있어’서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일 때에 삶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야 삶이 있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면 돈이 있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가 일을 할 적에는 돈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삶 때문에 일을 하고, 오로지 삶을 가꾸고 지어서 아름답게 하루를 누리려는 뜻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즐거우면서 돈도 저절로 따라옵니다. 기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기쁘면서 돈도 찬찬히 따라오지요. 고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고될 뿐 아니라 돈도 고되게 들어와요. 힘겹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힘겨운데다가 돈도 힘겹습니다.
일을 찾으려 한다면, 먼저 삶을 어떻게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고 하는 삶을 먼저 찬찬히 생각해서 알뜰살뜰 가꾸어야 합니다. 삶을 그림으로 아름답게 그릴 때에, 내가 할 일이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삶을 그림으로 즐겁게 그리기에, 내가 할 일이 즐겁게 나타납니다. 삶을 그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는다면, 직업이나 노동은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리하여 돈은 좀 벌거나 만질는지 모르나, 막상 ‘무엇을 해야 내 삶이 기쁘거나 아름답거나 보람이 있는지는 모르는’ 모습이 되고 말아요. 생각이 없이 돈만 벌어서 무엇을 할까요? 삶을 그리지 않고 돈만 많이 모은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하는 옛말은, 생각을 해서 삶을 그리는 사람만 ‘삶을 누리’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고되거나 벅찬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일이 고되거나 벅찹니다. 지겹거나 따분한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꿈이 없으니 지겹거나 따분합니다. 귀찮거나 성가신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사랑이 없으니 귀찮거나 성가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그리고, 꿈을 지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 삶을 그려서 담고, 꿈을 지어서 놓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서 가꾸어야 합니다. 이때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름다운 손길을 타면서 따사롭고 넉넉하게 이루어집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