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책읽기



  마루야마 겐지라고 하는 분이 이녁 꽃밭을 가꾸면서 ‘꽃’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해’와 ‘빗물’을 바라보는 동안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은 셈이라고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나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면서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읽은 셈이라고 느낀다. 먼먼 옛날부터 집에서 살림을 지은 사람들 누구나 어마어마하구나 싶은 책을 읽은 셈이지 싶다.


  한문을 익혀서 중국책을 읽을 때에만 ‘책읽기’가 되지 않는다. 임금님 곁에서 나랏일을 보아야 ‘지식’이 되지 않는다. 집일을 하고 집살림을 돌보는 모든 몸짓이 책읽기이면서 지식이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하루가 삶이자 사랑이면서 배움이고 책이요 지식이다.


  우리는 언제나 ‘책을 읽는’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삶을 누리고 즐기고 짓고 가꾸고 일구고 가다듬고 거느리면서 다스리기 때문이다. 종이책도 책이지만, 종이에 얹지 않고 마음에 얹어서 나누는 삶책도 책이다. 삶책을 슬기롭게 읽을 때에 철이 들고, 철이 들 때에 아름다운 숨결로 거듭난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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