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60. 꽃을 피우는 자리
꽃은 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꽃이 없다면 이 지구별에 아무런 삶이 없습니다. 꽃이 없다면 풀과 나무도 스스로 살지 못하지만, 사람도 풀벌레도 새도 들짐승도 모두 살 수 없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와 씨앗을 맺지 못합니다. 꽃이 피고 나서 천천히 시들어야 비로소 열매와 씨앗을 맺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씨앗이요 열매인데, 꽃이 져서 이루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꽃을 먹는 셈입니다. 열매나 씨앗으로 모습을 바꾼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나 꽃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목숨을 건사하니까, 우리 몸은 모두 꽃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너도 꽃이요 나도 꽃입니다. 다 함께 꽃입니다. 이리하여,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바라보고, 꽃을 느끼며, 꽃을 생각합니다. 꽃내음을 맡으면서 빙그레 웃고, 꽃빛을 마주하면서 싱그러이 노래하며, 꽃숨을 쉬면서 사랑을 새롭게 일굽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우리는 으레 웃음꽃이나 눈물꽃을 엮습니다. 웃는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고, 우는 얼굴에는 눈물꽃이 자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나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우리는 으레 삶꽃을 엮습니다. 삶으로 이루는 꽃을 사진으로 담는 셈인데, 삶꽃을 찍는 사진이니 ‘사진꽃’이기도 합니다.
꽃을 피우는 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내가 선 이곳에서 꽃이 핍니다. 내 마음에서 꽃이 피고, 내 말 한 마디가 모두 꽃으로 거듭나며, 내 눈길에 따라 한결 함초롬하게 꽃빛이 흐드러집니다. 마음을 기울여 사랑으로 찍는 사진은 언제나 꽃답습니다. 4348.5.1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