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81. 찔레꽃내음이 찬찬히 퍼져서 (2014.5.14.)



  밥상에 올릴 풀을 뜯으려고 뒤꼍을 오를 때면 찔레꽃 하얀내음이 훅 끼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새봄인 삼월에 피는 꽃도 봄내음이 물씬 나고, 매화꽃이나 모과꽃이나 유채꽃이나 동백꽃이나 후박꽃이나 장미꽃도 싱그러운 내음이 몹시 곱다. 그런데 오월로 접어들어 여름을 코앞에 두고 찔레꽃이 피면, 이제껏 퍼지던 꽃내음을 모두 잊을 만큼 대단히 짙고 새하얀 꽃내음이 퍼지면서 온몸을 사로잡는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보낸 적이 없으니, 찔레꽃하고 얽힌 이야기가 아직 없다. 그러나 바로 오늘부터 내 삶을 새로 열어 내 이야기를 새롭게 지을 수 있다고 느낀다. 어제 이야기는 없어도 오늘 이야기가 있고, 앞으로 두고두고 누릴 모레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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