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만 남은 갓꽃



  바야흐로 논삶이를 하는 철이다. 이제 논둑이나 밭둑마다 유채꽃이나 갓꽃을 모두 베어 넘긴다. 아직 논갈이를 하지 않은 논에도 유채꽃은 모두 진다. 경관사업을 하느라 심은 유채는 작달막하게 살짝 자라다가 어느새 수그러든다. 바람에 씨앗을 날려 들녘이나 숲에 깃든 뒤 스스로 깨어나는 아이들은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쐬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처음에는 키가 작으나, 이듬해에는 숙숙 오르고, 세 해나 네 해가 지나면 밑둥이 퍽 굵으면서 크게 자란다.


  경관사업이란 ‘구경하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들이나 숲을 가꾸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꽃만 며칠 보았다가 모두 밀어내고 마는지 모른다. 돈으로 뿌리고 돈으로 갈아엎는다.


  마을을 돌보고 보금자리를 보살피려는 씨앗이라면, 꽃이 피고 지면서 씨앗이 맺을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면서 아낄 테지. 씨앗은 꽃이 되고 꽃은 새롭게 씨앗이 된다. 새롭게 씨앗이 된 숨결은 다시금 새로운 꽃으로 거듭난다. 삶은 꽃빛으로 흐르다가 씨앗으로 고요히 갈무리한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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